[독일 미대생 인터뷰] 04. 최기완

2017/11/21

<독일 미대생 인터뷰를 기획하며>

 

 짧은 기간을 두고 자주 바뀌는 한국의 입시제도. 특히나 학교 공부와 실기를 병행해야 하는 미술 계열 학생은 매번 달라지는 입시 방향을 쫓아가기 배로 바쁘다. 힘든 입시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바라던 학교, 학과에 입학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매 학기 버겁기만 한 학비와 재료비는 학생들이 창작활동과 배움에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예술대학을 통폐합시키는 대학의 방침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인간의 창의성을 다루는 예술 교육을 자본주의적 사고로만 입각해서 바라보는 오늘날의 교육 방침과 정책은 예술가의 삶을 꿈꾸는 학생들의 장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에 반해 단기간의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지켜봐 주며 창작과 예술 교육의 가치를 높이 여기는 독일.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미술 대학의 교육 덕분에, 독일은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를 꾸준히 배출하고, 나아가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필자는 오늘날 독일이 현대 미술계에서 가지는 위상의 원천으로 독일의 미술 대학(Kunsthochschule, Kunst Akademie)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주목하며,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을 만나 독일의 미술대학에서 경험한 입학·교육 과정에 관해서 이야기 나눈다. 또한, 지속적인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의 미술 대학 입시 및 교육 과정의 전반적인 문제점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네 번째로 바이센제 미술 대학교(Weißensee Kunsthochschule Berlin)에서 회화(Malerei)를 전공 중인 최기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바이센제 미술 대학교(Weißensee Kunsthochschule Berlin)에서 공부 중인 최기완 작가 (사진 제공: 최기완)

 

 

이정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한국에서 미술 대학을 다니셨던 경험과 오늘날 독일 미대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점에 관해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편하게 친구와 수다 떤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우선은 어느 학교에서 재학 중이신지 그리고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최기완(이하 ,,최’’): 안녕하세요. 저는 최기완이라고 하고요. 독일 베를린 바이센제 미술 대학교(Weißensee Kunsthochschule Berlin)에서 회화(Malerei)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학기를 8학기로 마무리하고, 현재는 휴학 중입니다. 10학기 이후에는 1년 동안 마이스터슐레(Meisterschule)과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오늘날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궁금해지는데요. 오래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천천히 시작해보겠습니다. 우선, 미술은 언제 그리고 어떤 계기로 처음 접하셨나요? 

 

최: 가정환경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할아버지께서 영화를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다큐멘터리를 하시는데 두 분 모두 원래 꿈이 화가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자주 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문예 창작학과에서 아버지를 만나셨던 어머니께서는 시를 쓰셨어요. 지금도 어머니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쓰세요.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랐어요.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인데, 캔버스 안에서 대단한 작업을 만들고 역사에 길이 남을 작가를 꿈꾸기보다는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에 매력을 느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죠. 자신에게 오는 자극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배우면서, 비록 풍족하지는 않지만 이렇게도 멋지고 즐겁게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이: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서야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일 년 남짓한 시간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에 충분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만 그냥 계속해오다가 뒤늦게서야 미술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만화를 좋아해 왔던 터라, 고등학교 내내 만화반에서 포스터도 그리고, 전시도 하고, 굿즈를 만들어서 팔기도 하면서 나름 소소하게 미술 관련 활동을 해왔어요. 하지만 대학 진학을 위한 미술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은 없었죠. 그래서 학교에서도 ‘너는 그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그래도 성적이 좋으니 성적으로 서울대를 가라’라고 해서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결국, 재수를 했죠. 재수하는 그해 여름까지 서울대 입시를 위해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었는데, 입시 조건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서울대 진학은 포기하고 홍익대를 목표로 다시금 준비했어요. 

 

 

이: 홍익대에 진학하셔서 학부를 마치셨습니다. 졸업 이후에 개인적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도 있고 혹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등의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건데, 그중에서 독일로 오시게 된 이유 혹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최: 저는 학교 다니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 안에서의 시스템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돈을 주고 학위를 따서, 작가가 되는 그런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주변에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동기들에게 ‘왜 대학원에 진학했어?’라고 물어보면 다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저는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어요. 우선 한국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럼 이제 어디로 갈 것인지가 중요한데, 프랑스 파리는 유럽 대륙을 이끌어 온 깊이 있는 철학과 미술이론에 비해서 현대미술 자체는 다소 감흥이 없었고, 미국·영국은 경제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선택지에서 제외했어요. 그렇게 제외하다 보니 마지막에 남은 곳이 독일이었어요. 독일에서는 내가 작가로 살든, 학생으로 살든 계속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있었어요. 혼자서 돈을 벌고, 생활을 만들고, 학교에 다니고, 작업하면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독일로 오게 됐습니다.

 

 

이: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무대로 독일을 선택하셨습니다. 현재는 미술 대학에 다니며 학생 신분으로 이곳에 계시는데요. 독일에서의 학업을 선택하신 이유와 미술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최: 독일에는 학생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많다고 들었어요. 어떤 혜택이 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우선 학비가 없다는 점에서 개인의 삶을 살아가면서 공부도 충분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독일 미술대학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었죠. 그래서 우선은 어학을 공부하고, 일을 구해서 생활을 만들어나갔어요. 6~8개월 정도를 독일어 학습에 집중하다가, 중간에 뒤셀도르프 미술 대학교에 지원할 기회가 있어서 한국에서 했던 작업을 사진 파일로 만들어서 포트폴리오로 제출했어요. 얼마 뒤에 답장을 받았는데, 최하점인 3점에 가까운 2.9점을 받았어요. 다소(?) 충격적인 점수를 받아 들고서 독일에서는 내가 한국에서 해오던 작업으로 뭔가를 보여주기는 힘들구나, 작업 방식과 보여주기 방식이 잘못됐다 싶었죠.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학교도 알아보고,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할지 이전 작업을 전부 펼쳐놓고 많이 고민했어요. 그렇게 6개월가량의 시간을 보내고 베를린에 있는 바이센제 미대(Weißensee Kunsthochschule Berlin)에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합격해서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들어갔어요. 

 

 

이: 한국에서 경험하신 미대 진학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최: 바이센제 미대(Weißensee Kunsthochschule Berlin) 진학 당시의 과정을 우선 말씀드리자면, 서류 접수 이후에 마패(Mappe, *포트폴리오와 동일)를 언제까지 제출하라고 연락을 받아요. 주어진 날짜에 마패를 제출하면, 그날 밤에 자신의 마패가 통과됐는지 혹은 안 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음 날에 실기시험을 보는데, 오전에는 모델 드로잉을 하고 오후에는 색감 테스트를 해요. 흑백으로 프린트된 명화를 주고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색을 칠하거나 새롭게 창작하는 시험이었어요. 시험을 마치고 다음 날에는 전날에 제출했던 작업물과 마패를 가지고 교수들과 인터뷰를 해요. 아무래도 제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독일어를 알아듣는지, 독일에 온 지는 얼마나 됐는지, 독일어로 우리가 대화해나갈 수 있을지, 독일에서 몇 번째 시험인지,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지 등을 물어봤어요. 이 과정을 마지막으로 최종 합격 여부를 알 수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2004년도에 봤던 서울대 시험이랑 비슷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당시 서울대 입시가 더 창의적인 주제를 다뤘어요.

 한국에서의 진학 과정과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은 실기시험을 같이 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리는 훈련된 ‘학생’들이었고, 독일에서는 만화를 그리던 친구, 병원에서 일하는 현직 의사 등 직업과 나이의 층이 다양했어요. 요약하자면 독일은 시험에 나오는 주제는 평범한데 지원자들의 경험과 창의성이 다양했고, 반면에 한국은 주제는 창의적으로 주어지는데 학생들이 학원에서 훈련된 창의력과 경험으로 시험에 임하는 거죠.

 

 

 

 바이센제 미술 대학교(Weißensee Kunsthochschule Berlin)의 정문 모습 (사진: 이정훈)

 

 

이: 바이센제 미술 대학(Weißensee Kunsthocschule Berlin)에서 8학기까지 마치셨는데요. 입학 이후의 전체적인 학교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해요. 

 

최: 학교에 들어와서는 처음에 학교 공간을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내가 어떤 재료와 기계를 어디에 가면 쓸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작업을 할 수 있는지를 배우고 2 학년에 올라가요. 회화과에는 교수가 세 명이 있는데, 3개월마다 돌아가면서 세 명의 교수 반에 전부 들어가 보기를 권장하더라고요. 돌아가면서 각각의 반을 경험해보면서 적응하는 시기를 가지는 거죠. 그리고 3 학년에 올라가서는 자기 작업의 성향과 방향에 맞는 교수를 정해서 그 반에만 들어가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작업을 회화 장르에서만 머무르고 싶지 않아서, 회화(Malerei)에서 두 반, 조소과(Bildhauerei)에 한 반을 들어갔어요. 반마다 성향도 다르고, 수업 방식도 달라서 학기 내내 너무 정신없게 보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는데, 그만큼 다양한 관점에서 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학생들의 작업에 쓰이는 다양한 기계와 장비가 구비되어 있는 작업장 모습 (사진: 이정훈)

 

학생들의 작업에 쓰이는 다양한 기계와 장비가 구비되어 있는 작업장 모습 (사진: 이정훈)

 

 

 

이: 독일 역시 도제식 교육의 시스템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말씀을 들어보니까 일반적으로 한 명의 교수 아래에서 사사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최: 사실 학교 시스템이 고정되어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해요. 하지만 졸업할 때는 결국에는 한 명의 교수를 선택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아마 한 명의 교수 아래에서 배움을 받는 도제식 시스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직 경험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주변의 졸업생들로부터 전해 듣기에는 졸업장에 내가 어느 교수한테 사사하였다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졸업 이후에, 작가로 활동하면서 내가 어느 학교에서, 어떤 교수 밑에서 공부를 했는지에 따라서 전시 기회를 더 얻기도, 덜 얻기도 혹은 관계자와 대중의 기대를 높게 받기도, 적게 받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미대가 위에서 아래로 줄지어져 있듯이, 독일에서도 어쩌면 나름의 서열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 부분은 독일에서 미술 대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 앞서 학교의 전체적인 커리큘럼을 말씀하시면서 2 학년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클라쎄(Klasse, 반) 위주의 수업을 듣는다고 하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한 학기의 수업이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최: 우선 학교에서 연 단위의 계획이 나와요. 예를 들어서 이번 여름에 어디서 전시를 하고, 겨울에는 어디서 워크숍을 한다 등의 계획인데, 이에 맞춰서 각 반의 수업 방향, 주제가 정해지는 것 같아요. 반마다 한 학기의 프로젝트 혹은 전시가 있는데, 이에 맞춰서 각자 작업을 진행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한국에서 미대를 다니면서 했던 크리틱(Critic) 수업과 같다고 보시면 돼요.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연세가 있으시거나 오래 활동하신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의견을 말할 때 약간은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있는데, 반면에 독일에서는 교수의 연식에 상관없이 ‘Du(너)’라고 불러서 그런지 몰라도 조금 더 편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거리낌 없이 작업에 관해서 교수와 같은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작업에서 부족한 부분이나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 당시 최기완 작가가 사용하던 작업실 모습 (사진: 이정훈)

 

 회화과(Malerei) 학생들이 사용하는 작업실 건물 내부 (사진: 이정훈)

 

 

 

이: 편안한 분위기의 수업 이외에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서 제공하는 부분이 있나요? 

 

최: 학교 안이 아닌 다른 도시나 공간에서 전시하게 되면 학교에서 재료비, 대관비, 교통비, 출판비 등을 지원해줘요. 모든 전시마다 모든 사항에 있어서 지원을 해주는 건 아니고요. 때마다 다른 것 같아요. 지난 학기에 제가 참여했던 조소과 반에서는 그리스 아테네에 가서 전시했었는데, 학교에서 전시 진행비와 전시 도록 출판 비용을 지원받았어요. 한국에서는 비싼 학비를 내면서 그만큼 돌려받는 느낌이 없었던 것에 반해 여기는 제가 학교에 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기회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경제적인 지원 외에도 학교에 다니면서 전시를 할 기회가 많다는 것도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간혹 있는 오픈 스튜디오(open studio)와 졸업 전시가 전부였는데, 독일에서는 해마다 있는 룬트강(Rundgang)을 비롯해서 갤러리, 대안 공간에서 전시할 기회가 많이 제공돼서, 본인의 능력껏, 재량껏 전시에서 작업을 보여 줄 수 있어요. 

 

 

이: 전시 기회가 많이 주어지는 환경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학생들이 기회를 직접 만드는 건가요?

 

최: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끼리 의견을 모아서 외부 공간에 연락해서 전시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수들이 직접 학생들을 위해서 외부에서 전시 기회를 가져와요. 이런 점에 있어서 독일에서 마주하는 교수는 어떤 위치에 자리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직업인으로서의 교수’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직업적인 측면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전시를 외부에서 가져오고, 일 년간의 수업 계획을 직접 짜는 걸 보면 교수라는 직업적인 위치와 역할을 알고 있는 사람들 같아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외부) 전시 기회가 많은 환경이 갖추어진 것도 이들이 그만큼 열심히 일한다는 증거이자 결과물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앞서 짧게 룬트강(Rundgang)에 관해서 언급하셨는데, 어떤 행사이며, 참여 일원으로서 행사 중 어떤 모습을 접했고,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시자면?

 

최: 룬트강(Rundgang)은 학교의 연례행사이고요. 학교 전체의 오픈 스튜디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학교에서 가졌던 오픈 스튜디오와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규모와 참여하는 사람들의 범위에서 차이가 있어요. 베를린에는 미술 대학이 두 개밖에 없으니까 그만큼 중요한 행사로 인식되고 있고, 학교가 무대인 도시 축제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룬트강(Rundgang)에 참여하는 학생의 지인이나, 가족 이외에도 갤러리스트, 컬렉터, 다른 학교 교수와 학생 그리고 일반 시민까지 행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요. 작업을 보러 와서 구매하기도 하고 혹은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마주친 사람들과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마치 동네 축제 같은 분위기가 해마다 연출되는 것 같아요.

 

 

 

룬트강(Rundgang)을 동네 축제처럼 편하게 즐기는 관객의 모습 (사진: 이정훈)

 

 

 

이: 어떤 이유에서 다양한 직업, 연령층이 룬트강(Rundgang)을 찾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최: 방금 말씀드렸듯이, 아무래도 베를린 안에는 미대가 베를린 예술대학교와 바이센제 미술 대학교밖에 없으니까, 수요와 공급 면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찾게 되는 결과가 나오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문화를 대하는 인식과 구조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한국에서는 피카소, 렘브란트 등 유명 화가 전시는 시간을 내서 보러 가지만, 학생들의 작업을 보기 위해서 학교와 전시장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독일에서는 시간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시간과 돈을 들여서 기꺼이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이는 어쩌면 노동의 구조에서 발현되는 사회적, 경제적 여유의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룬트강(Rundgang)에 참여한 한 학생의 설치 작업을 직접 경험하며 즐기는 관객의 모습 (사진: 이정훈)

 

 

 

이: 이번 인터뷰의 지면만으로 문화를 인식하는 방법과 소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기에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쉽지만 이에 관해서는 지난 인터뷰와 계속될 인터뷰를 통해서 계속 고민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어느덧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르게 됐는데요. 그간 해오셨던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고민하는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최: 한국에서는 주로 회화 작업 위주로 했었어요. 놀이를 주제로 하는 작업을 했는데, 놀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물질을 없애버리면서 나타나는 희귀하고 생경한 장면을 그렸어요. 

 

 

 

<물 없는 물놀이>, Oil on Canvas, 162.2 x 130.3, 2012

 

 

 그리고 독일에 처음 왔을 때는 어쩌면 접하는 환경으로부터 파생한 이방인의 소외감,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관심 있게 다루기 시작했고, 학교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접촉하고 마주치면서 주변과 경계 그리고 그 속에서의 관계를 다루는 회화, 설치 작업을 하고 있어요. 조소과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설치와 동력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는데요. 작년 룬트강(Rundgang)에서 처음으로 동력을 써서 작업을 해봤어요. 

 <Hörstein>(2016)은 벽면의 드로잉, 선풍기, 돌로 구성된 드로잉·설치 혼합 작업이에요. 양쪽에 선풍기에 돌이 연결되어 있어서, 선풍기가 돌 때마다 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돌은 GOP 철책에서는 쓰는 청각석이에요. 북한에서 사람이 넘어오면 알아차릴 수 있게 함정처럼 만들어 놓은 건데, 일종의 경계를 만드는 도구인 거죠. 청각석이 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제가 그 공간에 가서 실탄을 넣은 총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두려운 상황과 청각석을 기준으로 나뉘는 국가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유발되는 긴장감 그리고 경계 지어진 관계 속의 불편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앞서 언급한 다소 무거운 주제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에요. 처음 학교에 다니면서 독일어를 잘하지 못해서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겪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못해서 학교에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걸 두려워하고, 경계 지어 자신을 스스로 외롭게 만든 개인의 경험과도 이어지는 작업입니다.

 

 

 <Hörstein>, wall drawing and installation with stone, electric fan, white string, 2016

 

 

 

 그리고 최근 아테네에서 참여했던 전시와 이번 룬트강(Rundang)에서 보인 작업은 <DemOCRacY>(2017)라는 제목의 설치 작업인데요. ‘DemOCRacY’의 양 끝을 접으면 ‘DO CRY’라는 말이 나타나요. 처음에는 단순히 글자놀이가 재밌어서 시작한 작업인데,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오늘날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어쩌면 당연한 시스템이자 사회적 둘레로 인식되는데, 사실 민주주의라는 다수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의 전면에 위치하면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소수인 사람들의 입장과 의견은 무시한 채,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 방식이라고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민주주의는 울음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라는 의미로 ‘DemOCRacY’라는 글자가 동력에 의해서 양 끝이 접히면서 ‘DO CRY’로 변하는 모습이 나타나도록 했어요. 한편 이런 주제의 작업을 가지고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가 발현된 곳인 아테네에서 작업을 선보여서 감회가 남다르기도 했어요.

 

 

 

<DemOCRacY>, Mixed media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2017

 

 <DemOCRacY>, Mixed media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2017

 

 

이: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최: 앞으로의 계획으로는 다시금 그림을 그려나갈 생각이에요. 제 작업은 이야기에서 출발하는데, 이를 평면 안에서 전달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동력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설치작업을 접하면서 무심한 공간에 생각과 이야기를 풀어서 장소화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어요. 그래서 한동안 설치 위주로만 작업했어요. 이제는 공간에 풀어놨던 것을 다시 평면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경계와 관계의 이야기에는 계속 머물겠지만, 움직임과 반복적인 형식에 무게를 두고 그림 속에서 표현해 볼 계획입니다.

 

 

이: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사히 학업을 잘 마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최: 감사합니다.

 

 

 

 

*본 인터뷰는 <독일에서 예술학기> 방향성에 맞춰 편집·수정한 글입니다.

 

 

 

 

<최기완 작가 홈페이지>

https://kianakun85.wixsite.com/kiwan

 

 

 

 

 

 

[이정훈]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Freie Universität Berlin)에서 (동양)미술사학과 중국학을 공부 중이다. DNA Berlin 갤러리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역임했고, 베를린을 기반으로 매 달 한 명의 작가와 함께하는 <KUNST TALK>를 기획·운영했다. 현재 월간 미술세계 독일 통신원으로 전시 소식과 리뷰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문화·예술 전문 독립 인터뷰어로 활동하며 국내·외 (시각 예술) 매체에 글을 기고 중이다.

 

이메일 : kunst.jeonghunlee@gmail.com

브런치 : www.brunch.co.kr/magazine/kunsthochschule

개인 홈페이지 : www.derjeongh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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