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에서 동독 말 찾기

2017/06/16

 
학원과 집만을 반복하며 어학에만 매달린 지 일 년, 드디어 대학에 합격했다. 나는 내가 대견했고 이 도시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나도 이제 대학에 갈 정도로 독일어 능력자가 되었구나 하면서 자신감이 충만했다. 당당한 걸음으로 오랜만에 시내를 활보하며 사방에 여유 있는 미소를 보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난 시내의 한 트램 정류장에 다다라 패닉에 빠졌다.

 

 

"Mein Leipzsch lobsch mir"

 

 

정류장 정면을 가득 채운 초대형 광고판 아래 그라피티로 쓰여있는 문구였다. 일 년 동안 공부했건만 전혀 알 수 없는 단어와 문장이었다. 거리에 쓰여있는 걸로 보아서 분명히 어려운 말은 아닐 텐데 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문장은 문법에도 맞지 않는다. 하필이면 시선을 피할 수 없는 곳에 쓰여 있어서 볼 때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괴로워했다.

 

표준 독일어로 번역하자면 'Mein Leipzig lobe ich mir.' 나는 나의 라이프치히를 자랑한다 혹은 칭찬한다라는 자부심 가득한 이곳의 사투리였다. 나를 당황하게 만든 이 말의 뜻은 사실 그 당시 딱 나의 기분이었던 것이다. 이 말은 라이프치히와 관련된 수많은 문학작품에 인용되었는데  라이프치히의 한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한 괴테의 파우스트가 대표적이다.

 

 

| 개구리는 말한다. "정말이야, 네 말이 맞아. 난 내 라이프치히를 자랑하고 싶어. 여긴 작은 파리와 같고 사람들을 키워내지..." 

 

 

당시 파리는 더럽고 범죄가 만연한 도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이 구문은 아름답지만 그와는 또 다른 라이프치히를 자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자부심은 독일의 분단을 거치며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간다.

 

 

 

 

말과 사고의 관계를 둘러싼 대립

 

획기적인 소재로 SF 장르에 파란을 일으킨 미국 소설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얼마 전 '컨택트'(원제 Arrival)란 영화로 한국에서 개봉했다. 언뜻 심오해 보이는 내용과는 달리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명확하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언어학자인 주인공은 외계인을 만나 그들의 언어를 분석한다. 시제와 순서가 없는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주인공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생각하고 살아가게 된다. 이 극단적인 설정은 그러나 공상과학 이야기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이념 경쟁 속에서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분단의 독일에서 또한 그러했다.

 

사회주의 체제인 동독은 언어를 호전적으로 ‘조작’(Sprachmanipulation)했고 자유주의 체제의 서독은 언어를 개방적으로 ‘조정’(Sprachlenkung)했다. 동독 정부는 ‘인민’들이 더 투쟁적이길 원했고 서독 정부는 ‘국민’들이 더 경쟁적이길 바랐다. 서독에서는 언어에 경제성이 침투하면서 명사화 구문, 축약어들이 널리 사용되었고 동독에서는 예를 들어 ‘Freundschaft’ (우정, 친밀감) 같은 평범한 단어에 대중 조직의 의미를 불어넣었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혁명을 함께 하는 ‘동지’와 비슷한 어감이다.

 

동독에선 편지의 말머리 끝에 느낌표를, 서독에선 쉼표를 붙였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문장 부호 하나로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또 서독은 외래어를 거리낌 없이 차용한 반면 동독은 자국어를 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한 예로 ‘생방송’은 서독에서 Live-sendung(라이브 방송)으로, 동독에선 Direktübertragung(직접 전송)으로 사용되었다.     
 
 

ㅣ동독과 서독에서 다르게 쓰이던 단어들 ㅣ

 

 

 

 

ㅣ동독 시절 라이프치히에 있던 통닭 구이 집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 통닭구이를 지칭하는 'Broiler'라는 간판이  보인다 ⓒ picture alliance / dpaㅣ 

 

 

 

 

 

서독 중심의 언어 통일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일한 이후 동독 독일어의 입지는 크게 흔들린다. 서독의 체제 안으로 빨려 들어간 동독 사람들은 서독의 언어 즉, 서독식 사고를 배워야 했다. 실업(Arbeitslosigkeit) 같은 생소한 단어부터 시작해 수많은 영미식 외래어에 익숙해져야 했다. 

 

서독인들은 자유롭고 거만하게 ‘모국어’를 뽐냈다. 그들은 자신감과 우울감에 차 있었다. 대화 중엔 ‘wir’(우리)를 강조하는 동독인들과는 달리 그들은 ‘ich’(나)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며 몸을 상대방에게 기울였다. 수동적인 동독인들에 반해 그들은 적극적이고 저돌적이었다. 동독인들은 그런 태도에 위화감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패자’로 인식하며 위축되었다. 특히 라이프치히가 속한 작센 주는 동독 내에서도 ‘성골’ 사회주의 지역이었던지라 상실감은 더욱 컸다. (언론을 장악한 동독 정부는 라이프치히 대학의 언론학부를 통해 모든 동독 언론인들에게 사회주의 이론과 노동자 역사 교육을 의무화시킴으로써 언어정책을 주도할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이곳은 체제 언어의 산실과 같았다.)

 

작센에서 시대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동독’을 연상시키는 자신의 말투를 부끄러운 구시대적 유물로 여기고 탈피해야 할 어떤 것으로 간주했다. 실제로 작센인 뿐만 아니라 독일 전체에서도 작센 사투리를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엔 표준 독일어를 배우기 위한 열풍이 동독 내에서도 가장 강력히 불었다. 

 

그러한 세태에 대한 반발도 물론 있었다. 서독을 경멸하는 뜻의 'drüben'(저쪽에서)을 자주 사용하며 서독의 모든 것을 폄하했다. 예를 들면 "이건 저쪽에서 온 물건이군"이라는 식이다. 그들은 동독의 단어를 고집하며 서독식 언어교육에 항의했다. 서독의 Grillhänschen(통닭구이)에 맞서 Broiler를 완강히 주장했고 오스텔지어(Ostalgie, 고향에 대한 향수라는 뜻의 nostalgia에서 파생된 신조어. 동독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를 떠올리며 처한 현실에 개탄했다.

 

 

 
 

| 통일 직후 한 라이프치히 출판사에서 펴낸 요리책 'Goldbroiler' ㅣ 

 

 

ㅣ통일 이후 동서독 언어 차이 등을 비교한 연구서 및 사전 ⓒ Matthias Heineㅣ

 

 

 

 

 

체제의 언어에서 지역의 언어로

 

독일이 통일된 지 어느덧 27년이 지났다. 동독의 색깔이 희석되면서 이제 작센의 언어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사회주의 이념의 껍질을 벗고 작센 고유의 사투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일상 언어 속에서 동독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도 플라스틱(Plastik)은 플라스테(Plaste)고 메츠거라이(Metzgerei, 정육점의 서독 말)는 플라이셔라이(Fleischerei)다. 

 

그렇지만 이제 누구도 이곳을 말을 듣고 동독의 말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 작센 사람들은 늘 그랬듯 작센 사투리로 말한다. 사실 언어는 그리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다. 수천 년 동안 민족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 수단이 불과 40년 간의 분단 때문에 크게 변할 리 없다. 체제는 언어의 강물에 샛길을 팠지만 조류를 바꿀 수는 없었다. 언어의 물줄기는 모든 과거를 끌어안고 묵묵히 가던 방향 그대로 흘러갈 뿐이다.

 

 

 

언어의 다양성 인정

 

오래전부터 제후 연합국이었던 독일에는 작센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 언어들이 존재해왔다. 그런 지역 언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지역의 역사와 사용자들의 사고방식을 응축한 형태가 되었다. 작센 말 또한 고유의 역사 속에 동독으로써의 기간이 조금 보태어졌을 뿐 동독의 언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의 언어 정책에 교훈이 없는 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은 ‘살결물’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바로 화장품인 ‘스킨’을 뜻하는 북한말이다. 참 아름다운 순우리말이다. 동독이나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에선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외래어의 침범을 막고 자신의 언어를 지켜내려는 노력을 한다. 이점은 분명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언어는 다양함으로 풍부해지고 다양함은 수많은 고유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면 달라진 언어 때문에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의사소통의 장벽에서 사고의 간극을 체감하고 나면 진정한 통합은 단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의 사례를 더욱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언어에 있어서 어느 한쪽으로의 ‘통합’이나 우열에 따른 ‘정화’가 아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필요하다. 다채로운 표현의 가능성이야말로 한 나라의 언어가 갖춰야 할 조건이 아닐까 한다.

 

 

 

 

 

ㅣ 독일어사전에서 찾은 동독말 urst. 대단한, 멋진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로 '지역 일상어'라고 나와있다 ㅣ

 

 

 

 

 

 

얼음보숭이 한 손에 들고 'Mein Leipzsch lobsch mir'를 다시 보니 그 으스댐이 밉지 않다. 아니, 오히려 부럽기까지 하다. 먼 훗날 우리는 과연, 북한말을 지역의 사투리로 존중할 수 있을까?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동독 안 위험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지겹도록 듣는 말,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편견에 쌓여있는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의 도시에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도 한 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unch.co.kr/@leipzig

글: 진병우 ㅣ leipzig.korea@gmail

사진: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ㅣ leipzig.korea@gmail 

 

 

 

 

 

 

 

 

 

* 참고자료 및 사진 출처: 

최경은, 통일 이후 동서독 독일어의 통합과정, in: 독일 언어 문학 제21집, 2013, p. 55-79

정동규, 통일 독일의 민족어 통합과정과 표준어 설정 연구, in: 어학연구, Vol.32 No.1, 1996, p. 132-167

http://www.leipziger-recherchen.de/mein-leipzig-lob-ich-mir-ein-peinliches-missverstandnis/

http://www.zeit.de/feature/mauerfall-das-geteilte-land

https://www.welt.de/kultur/article134125108/Sprach-man-in-der-DDR-ein-anderes-Deutsch.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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