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꼭 '동독'에서 공부를 해야겠니?

2017/06/09

 
서울에 살면서 고시원 방 값으로 35만 원을 냈다. 이쪽으로 누우면 머리 바로 옆에 있는 냉장고 소리에, 저쪽으로 누우면 옆 방 화장실 소리에 그 어느 쪽으로도 편히 잘 수가 없는 방이었다. 조금 넓은 관 속에 누웠지만, 시끄러워 죽지도(?) 못하는 그런 곳이었다. 일을 하면서 월 45만 원짜리 원룸으로 옮겼는데, 거기도 좁긴 마찬가지. 주거 환경에서 이미 나의 행복권을 박탈시키는 게 바로 서울 방 값이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나는 기숙사 방값으로 180유로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돈으로 22만 원쯤 한다. 방? 이때까지 살았던 방 중에 가장 넓다. 추가로 내야 하는 세금이 없고 인터넷이 포함된 가격이다. 넓은 창으로 햇볕이 따뜻하게 들어오고, 필요한 가구도 다 구비되어 있으니 이만한 곳이 따로 없다. 

 

내가 방 값으로 말을 꺼낸 이유는 라이프치히 대학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독일에 산 지 이제 4년 차, 모아 온 돈은 6개월 만에 다 쓰고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내가 바로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구동독 도시' 라이프치히로 이사하다: 편견 넘어서기
 
베를린에 살다가 라이프치히에 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알바를 하던 식당 사장님은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거기 옛날 동독 지역이고, 사람들이 외국인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좀 위험할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해요."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혹은 라이프치히로 오면서 이 말을 들었다는 사람을 나는 숱하게 봤다. 독일인이건 한국인이건 상관없이 말이다. 
 
 
내가 '구동독 위험한 지역'으로 온 건 순전히 학교 때문이었다. 지원했던 학교 중에서는 면접을 보는 유일한 곳이었고, 면접을 위해 라이프치히에 처음 왔을 때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의 모습에 첫눈에 반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서독 지역에 살고 있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독 학생들, '베씨(Wessi)'의 라이프치히행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어쩌면 외국인인 나보다 '위험한 동독'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들었을 서독 친구들은 처음 이곳으로 올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제가 라이프치히로 가겠다고 했을 때 많은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죠. 나치들이 많아서 더 조심해야 하고, 네가 정말로 라이프치히로 가고 싶은 건지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라고요. 몇몇은 '거기 바나나 있어?'라고 농담도 했고요. 동독에 대한 아주 전형적인 이미지였죠. 제 어머니는 1961년생인데 지금 동독에서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저한테 뭐 필요한 물품을 소포로 보내줘야 하냐고 묻기도 했다니까요."
 
 
독일 서쪽에 있는 뮌스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쭉 자라온 크리스티나는 대학교 석사과정을 하러 라이프치히에 왔다. 라이프치히는 물론 동독 지역을 방문한 게 처음이었다. 
 
 
"제가 원하는 커리큘럼이 있는 도시가 많이 없기도 했지만, 면접을 보러 처음 라이프치히에 왔을 때 도시가 너무 좋았어요. 하노버에서도 면접을 봤었고, 학교도 마음에 들었었는데 도시의 분위기가 별로였어요. 뮌스터는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했고요. 제가 느끼는 대로 라이프치히를 선택했죠."
 
 
바이에른주의 한 도시에 살다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온  카린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친구들 모두 제가 왜 '동독'으로 가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요. 동독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많이 퍼져있거든요. 제가 여기로 이사 왔을 때, 제 친구들은 장난으로 저에게 커피와 바나나를 보내주기도 했어요. 예전 동독에는 없었던 것들이죠."
 
 
 
 

 

 

 

ㅣ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독일 풍자 잡지 '티타닉(Titanic)'의 표지. (오이로 만든) 바나나를 들고 있는 동독인을 묘사했고 '내 첫번째 바나나'라는 글귀가 써 있다. 이 잡지는 2005년 동독 출신의 총리 후보, 앙겔라메르켈의 얼굴을 합성해 또 한 번 유명세를 탔다ㅣ 

 

 

 

오기 전부터 워낙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들이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느끼는 만족감은 더 높은 듯했다.

 

 

 

 

"저는 라이프치히로 오기로 한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말 기쁩니다. 저렴한 생활비에 삶의 질도 다른 도시보다 더 좋다고 느낍니다."

 

 

 

 

"이곳에서 전 처음부터 정말 행복했습니다. 서쪽과 많이 다르지 않았어요. 아, 물론 더 많은 극우 나치들과 작센 사투리가 있긴 하지만요. 월세도 훨씬 싸죠. 뮌스터는 물론 서쪽 다른 도시는 방 값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비싸거든요. 이곳에 대한 제 인상은, 동독 지역은 정말 많은 곳이 이제 새롭게 지어졌다는 거에요. 많은 도시가 현대적이고 세련됐어요. 서쪽의 도시에서는 없는 느낌이에요."

 
 

 

 

 

 

 

 

ㅣ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ㅣ

 

 

 

라이프치히에서 학생으로 살다: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

 

라이프치히와 다른 도시, 특히 서쪽 도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방 값이다. 앞서 말한 방 값은 라이프치히에서도 가장 저렴한 기숙사 방이다. 기숙사는 200유로 대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데, 물론 새로 지은 기숙사는 400유로가 넘는 곳도 있다. 독일에서는 학생들끼리 함께 사는 공동 주거 시스템인 '베게(WG, Wohngemeinschaft)'가 널리 퍼져 있다. 보통 1인실 방에 주방과 거실, 화장실을 공유하는 구조다. 라이프치히는 WG가격도 200유로 중반에서 300유로 중반까지 타 도시에 비해서는 저렴하다. 보증금은 보통 3개월 방 값을 낸다. 열심히 찾다 보면 150유로 같은 말도 안 되는 가격대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아직도 땔감을 뗄 가능성이 높다. 주말마다 함께 땔감 거리를 구하러 숲에 간다고 하니 나름 추억에 남는(?) 방이 되겠다.
 
 
 
 

ㅣ2017년 4월 기준 도시별 방값 비교. 독일 평균보다도 평당 1유로가 낮다 @www.immowelt.de ㅣ

 

 

 

라이프치히 대학 등록금도 다른 대도시에 있는 대학보다 싼 편이다. 독일 대학교는 주마다 다르지만 보통 학비의 개념이 아니라 '학기 분담금(Semesterbeitrag)'을 낸다.* 2017년 기준 라이프치히 대학 한 학기 분담금 206유로. 3년 전만 해도 193유로였는데 그새 많이 올랐다. 206유로에는 6개월간 교통비가 포함되어 있다. 독일은 교통비가 비싸기로 유명한데 학생증 하나만 있으면 라이프치히 구석구석, 근처 도시 할레까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그런데 이 등록금도 비싸다고 불만인 학생들이 있다. 바로 자전거 타는 친구들이다. 걸음마만 떼면 자전거부터 배우는 독일에서 자전거는 곧 일상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으니 등록금에서 교통비를 빼 달라는 이야기다. 

 

독일은 책 값이 비싸다. 하지만 비싼 전공서적을 사라고 요구하는 교수님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수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료를 복사물이나 파일 형식으로 제공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다. 수강하는 학생이 많은 교양 과목의 전공 서적은 도서관 서가 한쪽을 다 채울 정도로 넉넉하게 구비되어 있다. 원한다면 맘껏 공부할 수 있다.
 
 
 
 

 

 

ㅣ독일 라이프치히 대학 학생식당 전경 ㅣ 

 

 

 

독일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아무리 라이프치히라도 한 끼에 10유로, 마실 것은 3유로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 식당을 찾으면 4-5유로에 배부른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맛은 별개의 문제다) 채식부터 고기, 생선 등 다양한 메뉴가 있고, 그중 좀 비싼 편이지만 싱싱한 샐러드바도 마련되어 있다. 이것도 비싸다 싶으면 그냥 파스타를 선택하면 된다. 다양한 소스와 파스타 종류가 있는데 양과 상관없이 1.9유로다. 1.9유로.

 

그 외 생활물가도 서쪽 도시에 비해서는 저렴하다. 같은 슈퍼마켓이나 잡화점 브랜드라도 가격대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독일은 채소, 과일, 고기, 쌀 등 식료품부터 치약, 샴푸, 세제, 생리대 등 생필품까지 전반적인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낮다. 물론 유기농이나 고급 브랜드도 많아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독일은 사실 어느 도시에서나 '학생'으로 사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학생에게 주어지는 많은 혜택들, 독일 친구들은 무이자 학생 지원금을 받으며 얼마 안 되는(?) 생활비도 스스로 충당하며 공부한다. 취직하면서 갚아 나가고, 성적이 좋으면 반만 갚아도 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같은 비싼 학비가 아니라 생활비를 받는 수준이라 되갚는 데 그렇게 큰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외국인인 나는 타국에서 소수자로 살아가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이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준다. 무엇보다 역사가 깊고, 발전하는 도시와 대학에서 이렇게 저렴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동서의 경계를 지우는 라이프치히 학생들

 

'위험한 동독'이라는 편견에도 학생들이 라이프치히를 선택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서울'로 가야 하는 우리나라 정서와는 조금 다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점은 첫째, 집과 떨어져 독립적으로 살 수 있거나 정 반대로 집에서 가까운 곳, 둘째는 내가 원하는 커리큘럼이 있는 곳이다. 라이프치히에는 종합 대학을 포함해 응용과학대학, 미대, 음대 등 공립대학 4곳이 있다. 경영대학원과 같은 사립대학과 전문대학도 많다. 여기에 구동독 지역이라서 생긴 장점, 저렴한 집 값과 생활비 덕분에 서쪽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찾아온다. 

 

"저는 바이에른에서 태어나 밤베르크에서 학사를 했어요. 라이프치히는 원하는 전공이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바이에른과 남부 독일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도 컸죠. 좀 더 새롭고, 현대적이고 조금 덜 보수적인 곳으로 가고 싶어서 라이프치히를 선택했어요.

 

라이프치히는 정말 마음에 들어요. 학생들의 공간이 많고, 좀 더 여유롭고, 관용적입니다. 동시에 도시 규모도 큰 편이라 원한다면 각자 익명성을 가지면서 살 수 있어요. 대학이 도시 중심에 있고 대중 교통으로 쉽게 오갈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통일 직후 라이프치히는 썰물 빠지듯 서독으로 빠져나간 사람들과 남겨진 빈 건물로 희망이란 없어 보였다. 지금 라이프치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젊고 새로운 장면을 매일 매일 만들고 있다. 극우파들이 많고 반외국인 정서가 높다고 하지만, 그런 시위가 있는 날엔 그에 반하는 좌파 시위가 더 극렬히 열리는 곳이 바로 이곳, 라이프치히다. 독일 전역에서 온 학생들이 가득 찬 라이프치히 거리에 나치와 같은 '위험 분자'가 설 곳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라이프치히에서는 오히려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안적인 삶'을 이뤄내는 곳이 더 많이 생기는 중이다. 공유 경제, 공유 거주, 채식, 재활용, 대안 문화 행사 등 라이프치히 곳곳에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삶을 꾸릴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고 있다. 회색의 라이프치히에 다양한 색깔을 칠해가는 학생들, '위험한 구동독'이라는 편견을 없애는 건 이제 그 편견을 딛고 이 곳에 자리를 잡은 학생, 그리고 청년들의 몫이다.
 
 
 
 
 

ㅣ라이프치히 대학교 뒷마당. 학생들이 자유롭게 쉬고 있다 ㅣ

 

ㅣ독일 라이프치히 극우파들의 시위가 예정된 날, 반극우를 외치며 뛰쳐나온 시위대로 극우파들의 얼굴은 찾기가 힘들다 ㅣ

 

 
 
서쪽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이, 또 동쪽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깨는 건 쉽지 않다. 서쪽 지역에서는 구동독 지역을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고 한다. 굳이 갈 필요도, 관심도 없다. 동서를 가르는 장벽은 무너졌지만, 장벽이 있던 경계선은 여전히 사람들 마음 속에 새겨져 있는 셈이다. 

 

통일이 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 모두 서독으로 떠났던 동독 젊은이들이 있었다. 이제는 좀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구동독'을 찾아온 서독 친구들이 있다. 고향을 떠나기 위해서, 원하는 공부를 위해서, 혹은 더 저렴하게 살기 위해서. 어떤 이유로 어디에서 왔든지 간에 라이프치히로 모여든 이 학생들은 동서를 오가며 자연스럽게 그 경계선을 지워갈 것이다.

 

"라이프치히는 한마디로 정말 멋진 도시예요. 비록 다른 곳보다 나치들이 좀 더 많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라이프치히는 정말 다양하고 꽤 관용적인 곳입니다. 좌파 씬도 엄청 크고요. '베씨'들이 구동독 지역에서 살아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하면 아마도 조금이나마 편견을 깰 수 있지 않을까요."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동독 안 위험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지겹도록 듣는 말,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편견에 쌓여있는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의 도시에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도 한 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unch.co.kr/@leipzig

글: 이유진 ㅣ leipzig.korea@gmail

사진: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ㅣ leipzig.korea@gmail 

 

 

 

 

 

 

 

 

 

 

* 덧 붙이는 글: 

독일은 주마다 교육 정책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학교별로 학비 및 학기 분담금이 다 다르다. 학비가 안 든다는 이야기는, 수업에 지불하는 '학비(Studiengebühren)'가 없다는 뜻이며‚ 매 학기마다 학기 분담금(Semesterbeitrag) 개념으로 100-300유로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보통 해당 지역 교통비와 기숙사와 같은 학생 시설 및 서비스 관리비, 행정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지금도 독일은 정해진 교육 기간(학사 3년, 석사 2년)을 넘겨 오랫동안 등록하거나 졸업생이 다시 학사 공부를 하는 경우, 또는 외국인 학생에게만 학비를 부과하는 곳이 있다. 라이프치히 음악대학은 2016년부터 비 유럽연합 국가 학생들에게 학기당 부담금 이외에 학비 1800유로를 받는다. 남서쪽 지역의 바뎀-비텐베어그 주에 있는 대학도 올해부터 유럽연합에 소속되지 않은 외국인 학생들에게 학기당 1500유로를 받고 있다. 이는 독일 최초로 주정부 차원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독일 사회에서 지금까지도 논쟁이 심하다. 독일 학생들은 '모두를 위한 교육(Bildung für Alle)'를 외치며 학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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