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를 떠도는 '지옥행 열차'

2017/05/26

독일 라이프치히에는 매 년 5월, 딱 4일 동안만 운행하는 ‘지옥행 열차’가 있다. 세계 최대의 고스 축제 ‘웨이브 고딕 트레펜(Wave-Gotik-Treffen, WGT)’ 행사에 참가하는 고스족들을 위한 특별 노선이다. 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피칠갑 분장을 한 고스족들로 가득 찬 트램을 보고 있으면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스스로가 오히려 낯설어진다. 

 

내가 이 괴상한 사람들을 처음 본 건 지난해 라이프치히에 첫 봄을 맞이했을 때다. 트램을 타고 중앙역을 지나다가 그 앞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고 ‘저 시꺼먼 무리는 대체 뭐지?’라고 무심코 지나쳤다. 고스 문화에 빠져있는 이들의 축제라는 걸 듣고 생각했다. 

 

‘서양에도 오타쿠들이 많구나’ (절레절레)

 

 

ㅣ라이프치히 고스 축제 WGT 공연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고스족들ㅣ

           

그런데 왜 하필 라이프치히일까?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도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 바로 오기도 힘든 라이프치히에서 이런 큰 행사가 열리는 이유는 뭘까? 

 

지난 5월 또다시 이 축제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이 도시를 지켜보기로 했다. 중앙역 앞에 몰려있던 검은 무리는 4일간의 축제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이들이었다. 나흘간 도시 곳곳에서 계속되는 음악 축제의 표는 120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15만 원이 넘는다. 나 같은 가난한 학생에게는 얼토당토않은 액수다. 행사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라이프치히 클라라 공원에서 고스족들의 피크닉이 열린다고 한다. 축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시민들과 매력적인 피사체를 찾는 사진 애호가들에게는 필수 코스라고 하니 나도 주섬주섬 사진기를 챙겼다. 평범한 옷차림이 행여나 더 튈까봐 위아래 옷을 검은색으로 골라 입었다. 넓은 공원이지만 그들의 소풍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가면 된다.  

 

저승사자 같은 옷에 피칠갑을 한 이들, 해골 분장에다 얼굴을 뒤덮은 격한 피어싱, 검은 프릴로 둘러싸인 화려한 드레스, 검은색이 보여주는 다양성이 이렇게도 많았나 싶을 정도다. 비슷한 또래의 그룹부터, 부부, 아이와 함께 온 가족,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가세한 대가족까지, 이들을 하나의 연령층으로 묶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왠지 모르게 폭력성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 외모들,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멈칫멈칫하다가 와중에 좀 부드러워 보이는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대부분의 이들이 수 년에서 십 수년 이상 참가해온 ‘베테랑’들이다. 

 

 

ㅣ라이프치히 고스축제 WGT에 참가한 고스족들. 흠, 이정도 복장은 아주 젊잖은(?) 편이다ㅣ

 

 

ㅣ 라이프치히 고스축제 WGT에 참가한 다니엘과 뢰미ㅣ

                       

라이프치히 주민(!) 다니엘과 뢰미는 16년째 이 고스축제에 참가하고 있다. “라이프치히 WGT는 통일 직후에 처음 개최되었어요. 처음엔 8개 밴드들이 모여서 이틀 동안 콘서트를 열었죠.” 다니엘의 입에서 행사의 역사가 줄줄 나온다. “시립 박물관에서 이 고스 축제에 대한 전시회를 하고 있어서 거기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요.”

 

비교적 무난한(?) 복장을 한 조지와 마리는 베를린에 산다. “우리는 고딕 음악 팬들이고요, 콘서트를 즐기러 왔어요” 아, 그렇다. 화려한 볼거리에 잠시 잊었지만 WGT는 사실 ‘음악축제’였다. 

 

 

ㅣ화려한 분장보다는 콘서트 참가가 주 목적이었던 조지와 마리 ㅣ

 

ㅣ라이프치히 고스축제 WGT에 참가한 고스 가족. 해골 바가지 자켓을 걸친 아이는 그저 즐거울 따름ㅣ

 

ㅣ라이프치히 시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스 축제 관련 전시회ㅣ

 

 

“나에게 WGT란...?” 

집으로 돌아오는 것

친구들과의 조우

새로운 경험

새로운 젊음

해마다 돌아오는 우리들의 하이라이트!

 

다니엘의 말대로 라이프치히 시립 박물관을 찾아갔다. 라이프치히 WGT 행사에 맞춰서 기획한 이 전시회의 이름은 ‘라이프치히의 암흑(Schwarz in Leipzig)’이다. 여기 가보면 고스족들을 조금 더 알 수 있을까? 

 

고스족들은 80년대 초 영국에서 시작된 펑크와 뉴웨이브 음악 팬들 사이에서 생겨난 하위문화 그룹이라고 한다. 현실보다는 영적이고 종교적인 것 그리고 철학적인 질문에 관심이 많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보고 동경하는데, 이런 죽음에 대한 동경이 검은색 옷과 해골이나 십자가, 관 같은 상징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삶에 대한 허무함, 비애 등의 감정에 애착을 느끼는 고스족들은 정치적 참여보다는 현대 사회와 거리를 두는 자세를 보였다고 한다. 이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관에서 잠을 잔다더라’, ‘고양이를 먹는다던데?’하는 소문들이 무성했다. 고스족들의 과격한 분장과 거친 음악적 취향은 아무래도 일반 대중에게는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독일에서 고스족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모이기 시작했다. 살아남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동독의 비밀 경찰 슈타지는 이 모임이 동독 정부에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예의 주시했다. 고스족 중 일부는 슈타지의 스파이가 되어서 정보를 보고했다. 슈타지가 고스족들을 감시하고 정보 보고를 했던 문서가 오늘날까지 남아 그 역사를 증명해주고 있다. 1988년 4월 30일 발푸어기스의 밤, 포츠담에 200여 명 이상의 고스족들이 모여 큰 축제를 벌였지만, 동독 정부는 이들을 잡아 가두고 모임을 해산시켰다. 고스족들은 그렇게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ㅣ동독 비밀경찰 슈타지가 라이프치히 고스족들에 대해 정리한 정보 보고 문서ㅣ

 

ㅇ 외모: 거칠게 뽕을 띄운 머리, 백색으로 화장한 얼굴, 빨간 입술, 검은색 복장

ㅇ 특징: 조용하고 완전 이상한 행동, 뱀파이어 사고 (관에서 자려고 함), 무덤을 파는 일을 하고 싶어하고, 검은 미사를 열고 싶어 함

 

 

ㅣ라이프치히 고스축제에 참가한 고스족들.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한다ㅣ

 

 

ㅣ라이프치히 고스축제에 참가한 고스족들ㅣ

 

 

ㅣ누가 쳐다보든 말든 누가 사진을 찍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ㅣ

 

1989년 겨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동서로 갈려졌던 독일에 새로운 시대가 왔지만 청년들의 상황은 불투명하고 불안정했다. 특히 완전히 새로운 정치 사회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는 동독 지역 청년들은 그 상황이 더욱 어려웠을 테다. 혼란은 가중되고 결속은 약해졌다. 이젠 동독이 아니라 구동독 지역이 되어버린 라이프치히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라이프치히 고스족 미하엘 브루너는 그의 친구들과 ‘문차일드’라는 이름으로 청년문화센터 디 빌라(Die Villa)에서 댄스의 밤 행사를 열었다. 사회와 개인적 삶의 불안정함 속에서 고스족들의 검은 축제는 다시 기지개를 켰다. 그간 갈 곳을 잃었던 고스족들은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모임이 커지자 고스족들은 라이프치히에 있는 클럽 코네 아일랜드(Conne Island)로 자리를 옮겼다. 손으로 직접 그린 행사 홍보 전단지는 독일 전체에, 그리고 유럽까지 퍼졌다. 1992년 열린 첫 번째 WGT 행사에는 이틀 동안 8팀의 밴드가 공연을 펼쳤는데, 이때 몰려든 팬들이 2000명에 달했다. 그동안 설 곳을 찾지 못했던 고스족들의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WGT는 이후 매년 5월, 부활절 이후 50일 째가 되는 성령강림절이 있는 주말에 개최되고 있다. 

 

통일 직후 시작된 라이프치히 WGT는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독일 통일의 역사와 시기가 비슷하다. 통일 직후 동독 지역에 불어 닥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스족들과 청년들의 해방구로 시작된 고스 축제 WGT, 이런 행사가 라이프치히에서 꽃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을까.

 

자신들만의 세계를 찾아 모여들었지만 고스족들은 여전히 편견과 루머에 시달렸다. 사탄을 숭배한다는 비난과 아이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따위의 소문이 돌았다. 정치적으로도 환영받지 못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군복을 차려 입어 좌파들에게는 나치라고 비판을 받았는데, 정작 행사장에서는 극우파 스킨헤드족의 공격을 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스킨헤드 족의 공격을 받아 병원에까지 실려가는 고스족들에 대한 사건 기사가 아직도 지역 언론의 아카이브에 남아있다. 고스족들을 주제로 한 만평은 이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코믹하게 묘사하고 있다.

 

 

ㅣ독일 고스문화를 풍자한 만평 @Stadtgeschichtliches Museum Leipzigㅣ

 

“어린 처자가 이런 꼴로 돌아 다녀도 되겠어?!? 처자 엄마는 대체 뭐라고 말하시던?!”
“엄마, 이 분이 엄마한테 뭐 물어볼 게 있다는데?...”

 

저항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 하위문화 그룹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모임은 계속되었고 라이프치히 WGT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졌다. ‘에헴’ 하며 체통을 지키고 있던 교회와 라이프치히 기념탑 등 도시의 주요 장소가 이 행사에 함께 하기 시작했다. 연극 무대인 샤우슈필하우스도 이 하위문화가 놀 수 있는 장을 제공했는데, 이른바 ‘고급문화’ 공간과의 협력도 처음으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라이프치히의 한 클럽에서 시작된 하위문화 축제는 이제 도시의 중심으로 옮겨왔다. 아니, 고스 문화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났다. 부정적 시선을 보내던 시민들도 이제는 그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행사를 즐긴다. 식당 주인도, 택시기사도, 호텔 주인도 고스 축제가 열리는 4일간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올해 열린 WGT에는 2만 3천여 명이 도시를 찾았다고 하니 지역 상권에 끼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라이프치히 WGT는 도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받아 2014년에는 라이프치히 관광상을 받았다.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로 거듭난 셈인데, 주류 문화에 대한 거리두기와 저항을 뿌리로 하는 하위문화의 반란이라고 할 만하다. 

 

행사는 커지고 시민들의 호응도 좋아졌지만 이것이 못마땅한 고스족들도 꽤나 많은 모양이다. 행사가 커지면서 따라오는 상업적인 성격들, 시 정부의 통제가 이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에 독립성을 외치는 목소리도 늘 따라온다. 앞서 언급한 31번 트램은 고스족들의 편의를 위한 것인 동시에, 고스족들을 한 데 모아 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라이프치히 WGT는 이렇게 서로가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축제의 정체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었다. 무엇보다 확실한 건, 이제 고스 축제하면 라이프치히, 라이프치히 하면 WGT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여기도 오타쿠가 많구나’라고 생각했던 나,

고스축제는 이제 라이프치히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웬만하면 이때 오세요”라고 말할 만큼 추천해주고 싶은 행사이자 독특한 도시의 풍경이다.  

 

 

ㅣ라이프치히 문화 공간 모리츠바스타이(Moriz Bastei)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고스 축제 참가자들ㅣ

 

| 이제 웬만한 복장으로는 카메라의 관심을 끌기도 힘들다. 플래쉬 세례를 받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ㅣ

 

아, WGT이야기에 묻혀 조금 섭섭해할 인물이 떠오른다. 바로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다. 라이프치히는 사실 바흐의 흔적이 남아있는 ‘음악의 도시’다. 바흐가 토마스교회 합창장으로서 은퇴할 때까지 음악 작업을 했었고, 그의 무덤이 이곳에 남아있다. 라이프치히는 고딕이나 뉴웨이브 등 하위 장르보다는 사실 클래식으로 간판을 달고 있는 도시인데, 라이프치히도 바흐로 마케팅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라이프치히에 WGT가 끝난 뒤에 곧바로 열리는 바흐 축제는 열흘간이나 이어지는 대장정이다. 라이프치히를 수식하는 단어 ‘음악의 도시’는 바로 바흐를 두고 시작된 말이지만, 이제는 그 음악의 범위를 넓혀야 할 것 같다. 다양한 하위문화와 주류문화가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함께 살아 숨 쉬는 도시, 바로 라이프치히다. 

 

 

 

 

 

 

*덧 붙이는 글: 2017년 WGT는 시기를 조금 늦쳐 6월 2일에서 5일까지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축제 홈페이지 (http://www.wave-gotik-treffen.de/info/info.php)를 참고해주세요.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동독 안 위험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지겹도록 듣는 말,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편견에 쌓여있는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의 도시에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도 한 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unch.co.kr/@leipzig

글: 이유진 ㅣ leipzig.korea@gmail

사진: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ㅣ leipzig.korea@gmail 

 

Please reload

Please reload

최신 업데이트

​최신 글 보기

Please reload

  • White Facebook Icon
  • White Instagram Icon
  • flea3
  • recipe3

TAG : ​독일, 베를린, 독일유학, 독일생활, 독일대학, 독일음대, 독일미대, 독일 커뮤니티, 독일에서 예술하기, DIA BERLIN

© DIA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