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흐르는 라이프치히의 선율

2017/05/19

 
 
한국에서 음악을 전공했던 나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작품 세계를 음악과 글을 통해 배우고 접했다. 보다 나은 연주를 위해 그들의 삶과 음악 세계를 상상하며 다가가려 애썼지만, 때때로 좁혀지지 않는 어떤 간극이 느껴졌다. 그런데 4년 전 라이프치히에서의 삶이 시작되면서 내게 종종 아...! 하는 탄성어린 순간들이 찾아왔다. 

 

라이프치히는 바흐, 멘델스존, 슈만, 바그너, 말러 등 클래식 음악사에서 소중한 음악가들이 살고 활동했던 도시다. 이곳에서 음악가들의 흔적과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며 그들의 음악을 더욱 생생히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음악과 음악가들의 세계에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더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 라이프치히에서 경험한 것은 음악의 '아름다운' 세계뿐만이 아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음악과 음악가들의 그늘진 면을 맞닥뜨렸다. 독일이 겪은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이곳의 음악도 그런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굴곡진 길을 걸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나치 정권과 그 뒤를 이은 동독 정권 하에서 음악은 이념과 체제에 속박된 채 왜곡되고 악용되었다. 가령 나치 정권은 바그너의 음악을 나치 집회의 극적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 사용했고, 바흐의 곡들은 원곡의 가사를 바꾸어 정권의 선전 도구로 이용했다. 나치 정권 하에서 유대계 음악가들은 음악 활동을 중단하거나, 이를 피해 미국이나 중립국 등지로 망명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동독 정권 하에서도 음악가들은 자유롭게 음악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음악이 사회나 정치와는 무관한 듯 보이지만,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된 음악의 역사는 음악이 당대의 사회, 정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 노텐슈푸어 표식ㅣ

 

 

음악의 흔적, 노텐슈푸어

 

통일 이후 라이프치히는 과거에 왜곡된 음악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그 위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대표적으로 노텐슈푸어(Notenspur)가 바로 그것이다. 노텐(Noten)은 악보, 슈푸어(Spur)는 흔적, 그리하여 노텐슈푸어는 '악보의 흔적'을 뜻한다. 라이프치히는 이 도시와 관련 있는 음악가들의 생가와 음악 관련 장소들을 방문할 수 있는 노텐슈푸어라는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노텐슈푸어는 많은 음악가들을 만나게 해 주는데,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보물 요한 세바스찬 바흐, 낭만주의 음악의 귀공자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음악사의 영원한 연인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 독일에서 가장 논쟁적인 음악가로 라이프치에서 태어난 리하르트 바그너, 라이프치히에서 말러교향곡 1번을 완성시켰던 구스타브 말러 등이 있다. 노텐슈푸어의 방문객들은 길 바닥에 새겨진 표식을 따라 코스를 돌아볼 수 있다. 이 표식은 우리들을 위대한 음악가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장소로 안내해 준다. 그렇지만 표식만 믿고 따라다니기에는 표식이 촘촘하게 나있지 않아서 자칫하면 라이프치히의 골목 골목을 후벼파게될지도 모르니 노텐슈푸어 어플에서 제공하는 지도를 이용하면 쉽게 장소들을 찾아갈 수 있다.

 

 

ㅣ노텐슈푸어 지도ㅣ

                                                        

꽃봉오리가 막 맺히기 시작한 이른 봄날 동료들과 노텐슈푸어를 따라 음악 산책을 나섰다. 우리는 라이프치히의 중앙광장인 아우구스투스 광장(Augustusplatz)에서 만나 산책을 시작했다. 이곳이 노텐슈푸어의 시작점인데, 광장 양쪽에는 시립 음악당인 게반트하우스(Gewandhaus)와 오페라하우스(Opernhaus)가 서로 마주보며 서 있다. 라이프치히 음악 활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안내판의 설명대로 노텐슈푸어 어플을 다운 받아 지도를 찾아보았다.
 
 
ㅣ 게반트하우스 전경 ©Jens Gerber ㅣ
 
 

ㅣ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 ©www.klingenburg.deㅣ

 

하나. 게반트하우스

 

노텐슈푸어의 첫 번째 장소는 게반트하우스다. 라이프치히 시립 교향악단인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전용 음악당이다. 동독 사회주의 시절에 건축되어서인지 화려하지 않고 조금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전면의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음악당 내부의 큰 천장 벽화가 무척 인상적이다. 라이프치히 출신 화가 지그하르트 길레(Sighard Gille)가 그린 ‘삶의 노래(Gesang des Lebens)’라는 작품으로 게반트하우스를 찾는 이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게반트하우스의 콘서트홀은 일반적인 콘서트홀 구조와 달리 오각형의 무대가 중앙에 놓이고 객석이 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베를린 필하모니의 콘서트홀 구조를 따른 것인데, ‘음악이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이념이 설계에 담겨 있다고 한다. 연주자를 둘러싸고 음악을 듣는 모습에서 계급도 지위도 없이 무리지어 음악을 즐기던 인류의 원초적인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처음 게반트하우스를 찾았던 날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콘서트홀에 들어섰을 때 관객들이 중앙의 무대를 둘러싸고 서로 마주하며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동네 잔치라도 온 듯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왼쪽 끄트머리 자리였는데 꽤 뒷자리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피아노 한음 한음이 내 귀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어떤 자리에 앉아도 차등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음악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정신이 공연장에 고스란히 녹아있어서 음악인으로서 감동이 컸다.
 
 

ㅣ멘델스존 하우스ㅣ

 

둘. 멘델스존 하우스

 

게반트하우스에서 방향을 돌려 다음 장소로 향했다. 10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멘델스존의 생가가 있었다. 생가 정문에 걸린 기품있는 멘델스존의 초상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멘델스존이 3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살았던 이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그의 당시 생활 모습과 음악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멘델스존은 스물 여섯의 나이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부임하면서 죽기 전까지 라이프치히에서 왕성한 음악활동을 벌였다. 우리에게 친숙한 결혼행진곡을 비롯해 우아하고 낭만적인 곡들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대학인 라이프치히 음악대학을 설립했는데, 이 학교는 그의 이름을 따 정식 명칭이 ‘라이프치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음악대학’이다. 멘델스존의 또 다른 주요 업적 중 하나는 그가 한 세기 가까이 잊혀졌던 바흐의 음악을 재조명하여 보석 같은 바흐 음악을 다시 세상에 알린 일이다.* 멘델스존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바흐의 존재를 전혀 몰랐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ㅣ멘델스존 하우스 특별 전시 "혈통과 정신", 나치 시절 게반트하우스 앞 멘델스존 동상 철거 전후의 모습ㅣ

 

그런데 멘델스존 하우스에서 흥미로운 전시를 볼 수 있었다. “혈통과 정신: 제 3제국에서 바흐, 멘델스존, 그리고 그들의 음악 (Blut und Geist: Bach, Mendelssohn und ihre Musik im Dritten Reich)”이라는 제목의 전시였는데, 나치 정권이 음악을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악용한 역사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나치 정권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바흐를 ‘독일인 중의 독일인’으로 추앙하며 바흐 음악의 위대성이 게르만 혈통에 의한 것이라고 선전했다. 반대로 유대계였던 멘델스존의 업적은 음악사의 우발적 사건으로 깎아내리며 그의 존재를 음악사에서 지우려 했다. 전시물 중에는 나치 정권이 게반트하우스 앞에 서 있던 멘델스존의 동상을 철거한 당시 사진도 있었다. 전시를 보며 음악이 권력에 의해 이렇게 왜곡되고 악용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사회와 음악계는 2008년 멘델스존 탄생 200주년을 맞아 지난 시대의 과오를 반성하고 멘델스존의 명예를 회복하는 작업을 전국적으로 벌였는데, 이 해에 라이프치히도 과거에 철거되었던 멘델스존의 동상을 그대로 재현해 바흐의 동상 근처에 건립했다. 잘못된 역사가 갈라놓았던 두 사람의 존재와 음악은 이제 이웃한 두 동상처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ㅁ 음악 듣기: 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 중에서 (결혼행진곡)  https://youtu.be/0Oo4z37OUEI
 

 

셋. 슈만 부부의 집

 

멘델스존 하우스를 나와 다음 방문지로 음악사에서 가장 낭만적인 음악가 부부,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가 신혼 시절을 보냈던 집을 찾아 나섰다. 멘델스존 하우스에서 10여 분을 걸어 '섬 거리'라는 재밌는 뜻을 지닌 인젤슈트라세(Inselstraße)라는 길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슈만 하우스인데 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앞 표지판을 보니 슈만 하우스는 현재 슈만의 생가와 클라라 슈만 음악 예술 초등학교로 나뉘어 쓰이고 있었다. 위대한 음악가가 살았던 집에서 교육받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마냥 부러웠다. 이 아이들이 이 곳에서 슈만 부부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한껏 누리고 물려받길 잠시 바랐다.

 

 

“Du meine Seele, Du mein Herz ~”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ㅣ슈만 부부의 신혼집 앞에서 슈만의 '헌정'이 흘러나온다ㅣ
 
ㅁ 음악듣기: 슈만 ‘헌정’ https://youtu.be/BF-YV-hGLGM
 
슈만의 집 앞에서 노텐슈푸어 어플은 아주 감미로운 슈만의 가곡 ‘헌정(Widmung)’을 들려주었다. 슈만의 집 앞에 서서 그의 가곡을 들으니 감동이 밀려왔다. 절절하게 사랑을 찬미하는 이 곡은 슈만이 사랑하는 신부 클라라를 위해 결혼 전날 헌정한 가곡집 ‘미르테의 꽃’에 수록된 곡들 중 하나이다. 슈만이 클라라 아버지의 반대로 그녀와 결혼하기 위한 긴 법정 싸움까지 벌였고, 결국 재판에서 승소해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된 이야기는 음악사에서 유명한 일화다. 열정적인 사랑의 힘 덕분이었을까, 클라라와의 신혼 시절 슈만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걸작들로 꼽히는 가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 ‘리더크라이스’ 등 바로 이 주옥 같은 작품들이 이 집에서 작곡되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렸다. 슈만 생가 외에도 슈만이 즐겨 찾았던 400년이 넘은 카페인 카페바움(Coffe Baum) 등 슈만 부부의 추억이 깃든 장소가 라이프치히 곳곳에 남아 있다.

 

 

| 라이프치히 오페라하우스 전경 © Kirsten Nijhof ㅣ

 

 

넷.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바그너

 

우리는 어느새 다시 아우구스투스 광장으로 돌아와 오페라하우스 앞에 섰다. 라이프치히 오페라하우스는 1693년에 개관한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오페라 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게반트하우스가 오케스트라 연주가 주로 이루어진다면, 이 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공연과 발레, 뮤지컬 공연이 주로 무대에 오른다. 구 오페라하우스는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그 후 현재의 오페라 하우스가 1960년 동독 시절에 근대적인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당시 동독의 사회주의 건축 양식 때문인지 외관은 별 다른 장식 없이 건조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공연이 있는 날 밤에는 실내의 오렌지 색깔의 조명 빛이 오페라하우스의 창 밖으로 비춰져 나오며 화려하게 변신한다. 아우구스투스 광장의 오페라하우스 앞 분수와 어우러진 야경은 무척 멋스럽다.

 

라이프치히 오페라하우스와 가장 관계가 깊은 음악가는 리하르트 바그너다. 히틀러가 사랑한 음악가로 알려져 있어 독일에서 얘기하기 가장 민감한 음악가이지만, 그가 라이프치히 출신이어서 이곳 사람들의 바그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1960년 오페라하우스의 재개관 기념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공연된 것에서도 그 애정을 엿볼 수 있다. 
 
 

  ㅣ 라이프치히 오페라하우스 공원에 서 있는 바그너의 동상 ㅣ

 

오페라하우스의 뒤편에는 조그마한 공원이 있는데 이곳에 바그너의 동상이 서 있다. 그의 동상 앞에서 노텐슈푸어 어플이 제공하는 오페라 ‘탄호이저’의 서곡을 들어보았다. 호른, 트롬본 등의 관악기가 느리고 서정적인 선율로 곡의 시작을 열었고, 이어 첼로와 바이올린이 선율을 이어받으며 장중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한낮의 따스한 봄햇살이 비추이는 공원을 거닐며 우리는 한동안 음악 속에 잠잠히 머물러 있었다. 오페라 ‘탄호이저’는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사 탄호이저가 연인 엘리자벳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힘입어 구원을 얻게된다는 내용을 장엄하고 웅장한 느낌의 선율로 담아낸 바그너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ㅁ 음악듣기: 바그너 '탄호이저' 서곡 https://youtu.be/KTM7E4-DN0o

 

 

 

아이러니 한 것은 탄호이저에 나오는 <순례자의 합창>이 나치 시절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몰아넣을 때 연주되던 곡이라는 사실이다. 히틀러는 이 곡을 들으며 자신을 독일 민족의 구원을 위해 악과 싸우는 선의 대변자로 생각했던 것일까? 바그너 음악이 갖는 이런 어두운 면을 생각하면 그의 음악이 주는 감동을 느끼다가도 한편으로 오싹한 기분이 든다. 바그너 자신이 가졌던 반유대주의적 입장과 그의 음악이 갖는 나치와의 연관성으로 인해 바그너와 그의 음악은 독일에서 여전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ㅁ 음악듣기: 바그너 '순례자의 합창' https://youtu.be/mADk_bqsr6M

 
하지만 2013년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으며 독일 전체적으로 그의 음악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제는 좀 더 떳떳하게 바그너의 음악을 음악 그 자체의 가치로 평가하고 즐길 수 있을 때가 되지 않았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의 음악이 여전히 금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라이프치히 오페라하우스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바그너의 오페라 시리즈를 매년 공연해왔다. 올해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라이프치히는 다른 곳에서는 잘 연주되지 않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바그너의 작품도 무대에 올리는데 애써왔다. 바그너의 팬들에게는 그의 음악 세계를 폭넓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반가운 기회다. 라이프치히의 이런 노력에서 바그너를 낳은 도시로서의 자부심과 애정이 엿보인다. 공원 한 편에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바그너의 동상을 보고 있으니 오랜 시절 방랑의 삶을 보냈던 그가 고향의 품으로 돌아와 안식을 누리고 있는 듯했다. 

 

통일된지 20여년이 지나며 이곳의 음악도 얼룩졌던 과거에서 벗어나 다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체제와 사상에 짓눌리지도, 체제의 도구로 악용되지도 않는 자유와 평화의 터전에서 음악은 다시 본연의 가치와 역할을 되찾았다. 예술의 꽃을 활짝 피게하는 비옥한 토양인 이 자유와 평화가 이 땅에 가득하길 소망한다.
 
 
 
 

 

 

* 바흐(1685-1750)는 멘델스존(1809-1847)보다 한 세기 전에 라이프치히에서 살며 음악활동을 했다. 라이프치히가 바흐의 도시로 불릴만큼 바흐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왕성한 음악활동을 하며 음악사에 빛나는 무수한 곡들을 남겼다. 하지만 바흐의 사후 바로크 음악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음악으로 치부되며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잊혀지게 되었다. 멘델스존이 살던 시절 바로크 음악과 함께 바흐도 그렇게 음악사에서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가로 바흐를 꼽을 수 있지만 바흐 이야기는 6월 라이프치히 바흐 축제에 맞춰 상세히 다룰 예정이라 이 글에서는 간략히만 언급했다.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동독 안 위험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지겹도록 듣는 말,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편견에 쌓여있는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의 도시에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도 한 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unch.co.kr/@leipzig

글: 최인혜 ㅣ leipzig.korea@gmail

사진: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ㅣ leipzig.korea@gmail 

*http://notenspur.de/

*https://www.gewandhausorchester.de/medien/presse/
*http://www.klingenburg.de/referenzen/gewandhaus-leipzig/

*http://www.oper-leipzig.d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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