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의 화려한 흉물들

2017/04/27

구글 지도에서 라이프치히를 검색하면 라이프치히 중심가와 함께 정남쪽으로 곧게 뻗은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약 2.5 킬로미터 이어진 이 길 주변은 지도상에서 시내처럼 살구색으로 칠해져 있다. 둥그런 중심가에서 수직으로 내려간 이 모양은 주변의 회색 바탕과 대비되어 마치 꽃 한 송이를 연상케 한다. 이 색은 구글에 정보가 있는 식당, 상점, 호텔, 볼거리 같은 관광시설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곳이 활기가 넘치는 곳이라는 걸 가보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다. 그 길 위에 칼 립크네히트 거리(Karl-Liebknecht-Straße)(이하 칼리)라고 쓰여있다.
 
 
ㅣ구글 지도에 나오는 라이프치히 시내와 아래로 길게 뻗은 칼 립크네이트 거리 ㅣ
 
 
칼 립크네히트는 독일 공산당(KDP)을 창당한 사람이다.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봉기를 일으켰다가 1919년 처형될 때까지 한 평생을 농도 짙은 공산주의자로 살다 간 인물이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거주했으며 아직도 생가와 살던 집이 거리에 남아있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현재 상업시설이 즐비한 젊음과 유흥의 중심지가 되어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거리는 동독 시절 그의 이름으로 명명되기 전 나치 치하에서 아돌프 히틀러 길로 불렸을 만큼 라이프치히의 요지였다. 실제로 중세부터 유럽의 남북을 잇는 길 가운데 칼리 거리가 있었다. 그 말인즉슨 공산주의 시절에는 물자 유통이 용이한 이곳에 산업시설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독일 통일 후 그 시설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칼리 거리의 현재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거기에 있다.
 
 

ㅣ칼 립크네이트 거리의 상점들. 라이프치히 출신 화가 미하엘 피셔(Michael Fischer)가 그린 벽화가 눈에 띈다 ㅣ

 

칼리 거리를 걷다 보면 ‘화려한 흉물’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파인코스트(Feinkost), 나토(naTo), 베르크 쯔바이(WERK 2)다. 모두 동독 시절엔 공장 또는 정치적 공간이었지만 현재 사회문화센터(Das soziokulturelle Zentrum), 쉽게 말해 대안문화공간으로 변화한 곳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이 공존하는 일상의 문화 공간. 그것이 이들이 표방하고 있는 목적이다. 나는 그 현장이 궁금해져 차례로 방문해 보았다.

 

 

참여의 참 맛, 파인코스트(Feinkost)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진미 또는 별미라는 뜻의 파인코스트다. 반듯하게 사각진 층층은 따로따로 쌓아 올린 듯 부자연스럽게 얹혀 있고 너저분하게 벗겨진 시멘트 사이로 벽돌이 뼈대처럼 드러나 있다. 입구는 건물 사이에 골목처럼 생긴 통로다. 쉽게 찾기 힘들어서 처음 온 방문자는 입구를 앞에 두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안으로 들어서면 녹슨 철골 지붕과 사방을 가득 채운 그래피티 때문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인적이 없다면 영락없이 폐허가 된 공장일뿐이다. 덕분에 동독의 체취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파인코스트는 1853년 양조장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1920년대 후반부터는 군대의 집결지로 이용되었다가 곧 식품제조공장으로 바뀌었다. 동독 시절에는 인민 소유 공장이 되어 통조림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다. 1973년에는 파인코스트의 간판인 '숟가락 가족(Löffelfamilie)'이 처음 불을 밝혔다. 부지는 통일이 되자 잠시 버려진 채로 있다가 1993년 라이프치히 시에 의해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게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서독의 자본이 곧바로 허물어 버렸을지 모른다. 마침내 1999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고 2008년부터 ‘숟가락 가족 협회’가 운영을 맡게 된다. 그들은 이 곳을 창조적 공간으로 개방하면서 대안 문화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현재 내부에는 개성 있는 소규모 상점들이 입주해 있고 중앙의 열린 공간에서는 정기적으로 벼룩시장, 길거리 음식 축제, 여름 극장과 같은 행사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나 또한 길거리 음식 축제에 참여해 본 적이 있는데 엄청난 방문자 수에 놀란 기억이 있다. 이제는 많은 주민들이 찾는 친숙한 장소가 된 것 같았다. 
 
 
 

l 파인코스트의 대표 간판 숟가락 가족(Löffelfamilie)ㅣ

 

특히 화려한 네온사인의 숟가락 가족은 천문 시계에 근거해 작동되는데 절기에 상관 없이 해가 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진다. 하지만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데다가 비싼 전기세 때문에 지속시간은 딱 90분뿐이다. 시간을 제대로 맞춰서 가지 않으면 밝은 자태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럴 땐 안내표지판에 써진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3분간 다시 불이 들어온다. 물론 3유로의 기부금이 포함된다.
 
 

검열할 수 없는 표현의 힘, 나토(naTo)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 보면 단층의 노란 건물이 보인다. 밝은 노란색 외관과 옛 모습 그대로의 공연 일정표가 동유럽 어딘가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교차로 쪽 둥근 모서리에 입구가 있다. 이러한 배치는 접근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를 통해 대외적 행사를 위한 장소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입구 위로 나토라는 이름이 작게 쓰여있다. 

 

나토는 1949년 동독의 정당 국민전선(nationale Front)의 집회 장소로 시작했다. 초기엔 국민 전선의 이름을 딴 naFro로 불렸는데 구전되면서 naTo가 되었다. 아무튼 그 시절 나무로 지어진 부분은 1953년 화재로 사라졌고 현재 석재 건물만 남아있다. 1982년 청소년 대안문화공간으로 바뀐 후 미술, 공연, 재즈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동독의 악명 높은 국가보안부 슈타지(Stasi)의 주둔지이기도 했다. 지역 감시와 행사의 검열을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ㅣ 예술 극장 나토(naTo)의 입구 ㅣ

 

통일 후에는 ‘문화와 커뮤니티센터 나토 협회’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공연예술극장으로 변모한다. 수많은 콘서트가 이곳에서 열렸고 그중에는 세계적인 괴짜 밴드 람슈타인의 첫 공연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라이프치히 지역 예술 영화 협회’가 독립영화 혹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데 독특하고 개성 있는 영화들이 흥미를 끈다. 현재 나토는 극우 및 반외국인 행동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등 정치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나토가 주최하는 행사의 백미는 직접 만든 미니 자동차로 근처 의산길을 달리는 비누곽 경주와 전쟁기념비 앞 호수에서 미니 보트들이 펼치는 욕조 경주라 할 수 있다. 매년 때가 되면 손수 제작한 작은 자동차와 보트들이 저마다 재치 있는 디자인을 뽐내며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한다.

 

 

 

기계공장에서 문화공장으로, 베르크 츠바이(WERK 2)

 

 

마지막으로 칼리의 끝자락에 위치한 베르크 츠바이에 가기 위해선 나토 앞 정류장에서 트램을 타고 두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트램에서 내리면 오른쪽으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들이 눈에 띈다. 가까이 가보면 영어 WORK와 같은 뜻의 베르크라는 간판이 뒤로 보이는 묵직한 건물과 너무도 잘 어울려 과거 이곳이 공장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파인코스트나 나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다.

 
 
 
 
이곳은 1848년 한 프랑스인에 의해 가스측정장치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다 1952년 동독 정부에 의해 인민 소유로 바뀌었다. 인민 소유 기업인 ‘라이프치히 가공제작 원료 검사기계’의 공장 분점이 되면서 베르크 츠바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통일이 되면서 잠깐 다른 기업으로 소유권이 넘어갔지만 곧 파산하고 1992년 결국 ‘라이프치히 문화중심 코네비츠 사거리 협회’에 의해 말 그대로 ‘문화 공장(Kulturfabrik)’이 되었다. 

 

1996년 라이프치히 시가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이곳을 사들였고 대안문화공간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운영권은 기존의 ‘베르크 츠바이-라이프치히 문화공장 협회’로 이관하면서 문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잘 보여주었다. 2002년부터 몇 번의 보수공사를 진행했고 2012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베르크 츠바이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 '할레D(Halle D)'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콘셉트의 콘서트, 파티, 축제들이다. 아무리 파티 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혹하는 테마가 분명히 있다. 한쪽에서 젊음의 열기를 방출하는 동안 또 다른 공간은 공방으로 꾸며져 있다. 여기선 누구나 도자기, 유리, 인쇄 공예 등 다양한 과정에 참여해 직접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이나 연극들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할레 A는 확 트인 공간으로 종종 소규모 박람회가 열리기도 한다. 할레 A와 D는 신청을 하면 누구나 대관이 가능하다.

 

 

다시 칼리로

여기서 소개한 곳들은 칼리의 일부에 불과하다. 여유 있게 거리를 헤매다 보면 숨겨진 명소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역사의 현장은 그 시간의 두께만큼 감동적이다. 유적지를 탐방하듯 나만의 코스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한다.

 

밤이 되면 거리에 줄지어 있는 이국적인 음식점들과 골목 사이사이의 펍들이 소란스러워진다. 이곳을 찾게 되면 어떻게든 취해서 돌아가게 된다. 그것이 술이 됐든 분위기가 됐든 아니면 흥이 되었든지 간에 결국 모두는 문화에 취한다. 

 

지난 날을 생각해 보면 칼리의 이야기는 사실 그다지 가볍지 않다. 그러나 결말은 공존과 조화 그리고 열정으로 귀결된다. 역사란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자들의 이야기고 그 증거가 여기 칼리에 있다. 그렇게 오늘도 문화 공장의 열기는 거리를 뜨겁게 하고 있다.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동독 안 위험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지겹도록 듣는 말,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편견에 쌓여있는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의 도시에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도 한 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unch.co.kr/@leipzig

글: 진병우 ㅣ leipzig.korea@gmail

사진: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ㅣ leipzig.korea@gmail

 

Please reload

Please reload

최신 업데이트

​최신 글 보기

Please reload

  • White Facebook Icon
  • White Instagram Icon
  • flea3
  • recipe3

TAG : ​독일, 베를린, 독일유학, 독일생활, 독일대학, 독일음대, 독일미대, 독일 커뮤니티, 독일에서 예술하기, DIA BERLIN

© DIA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