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일 미술을 보러 라이프치히에 간다.

2017/04/11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을 나오면 정면으로 현대적인 모습의 인문사회과학대학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곧이어 왼쪽으로 돌면 연방 행정법원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오른쪽으로 나오면 멘델스존이 설립했다는 우아한 음대 건물이 보인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이 나의 주된 활동 공간이다.

 

나는 도서관을 나설 때면 오른쪽 길을 더 선호하는데 법원이 주는 위압감을 피하고 싶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길이 짧지만 독일스러운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곳은 현대적으로 변해버린 라이프치히에서 보기 드물게 고즈넉한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좁은 길과 높은 가로수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 가을이면 널따란 플라타너스 잎이 바닥을 가득 메우고 조용히 바스락거린다. 

 

이 거리를 걸었을 수많은 학자들을 상상하다 보면 켜켜이 쌓인 역사의 낭만에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길 끝에 서있는 의문의 흰 건물에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1년이 넘도록 의아하게만 생각해왔다. 옆을 지나가면서 도대체 여긴 뭘까 생각해 보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거기가 그 유명한 ‘하게베’(HGB: Hochschule für Grafik und Buchkunst Leipzig), 다시 말해 라이프치히 미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실제로 미대생을 만나고 나서였다.

 

 

ㅣ 독일 라이프치히 예술대학 (Hochschule für Grafik und Buchkunst: HGB)의 건물 전경ㅣ

 

2012년 7월 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German now, from Leipzig’라는 이름의 낯선 전시회가 열렸다. 나처럼 ‘독일의 현대미술과 라이프치히라는 도시가 무슨 상관이지’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어둡고 난해한 구상으로 가득한 작품들 앞에서 관객들은 신선함 혹은 난감함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론 지독히 독일스러운 화풍에 감탄한 관객도 있었을 것이다. 

 

독일 미술은 분명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하물며 라이프치히라는 작은 도시의 미술은 이전에는 스쳐 들어본 일조차 없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사이 독일 미술, 나아가 현대미술의 현재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라이프치히를 방문하고 있었다.

 

20세기 초 미술계는 새로운 화풍들의 몸싸움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림은 점점 온건한 형태를 잃고 추상적으로 변하거나 극도로 단순해졌다. 거기서 더 나아간 작품들은 결국 평면을 찢고 나오기에 이르렀다. 조각도 그림도 아닌 작품들이 공간 속에 입체적으로 놓이거나 미디어라는 화면 속으로 다시 들어가 평면도 입체도 아닌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이제 미술은 ‘그린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2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분단되면서 미술계의 물줄기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게 된다. 서독은 매체와 방식의 혼란이 점차 정착되면서 장르가 다양해지고 진화해 나갔다. 하지만 애초에 사회주의는 ‘대중을 감정적으로 만들어 정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예술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체제의 선전과 홍보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동독에서도 특히 ‘마르크스' 대학이 위치한 라이프치히는 더더욱 그러했다.

 

 

 

| 베른하르트 하이지히 <Tod in Breslau-zäh+tapfer> 2001(좌), 볼프강 마트호이어 <Ein Baum wird gestutzt> 1971 (우) |

 

ㅣ 베르너 튑케 <Große Kreuzabnahme> 1983 |

 

60년대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활동한 베른하르트 하이지히(Bernhard Heisig), 볼프강 마트호이어(Wolfgang Mattheuer), 베르너 튑케(Werner Tübke)등은 표현의 억압 속에서 사회주의라는 국가 이념과 개인의 무기력이 뒤섞여 만들어 낸 삶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이들은 1977년 카셀 도큐멘타(세계 최대의 예술 박람회로 5년마다 독일 헤센주의 카셀(Kassel)에서 개최)에 등장해 국제적으로 ‘라이프치히 화파’로 인정받게 된다. 이 화파의 내공은 자연스럽게 라이프치히 예술대학(HGB)에 담기게 된다. 그 후 90년대 들어 다양한 예술 매체들의 혼재와 실험이 대중을 결국 작품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이들을 다시 이어 줄 대안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때 유럽의 현대미술계는 데미안 허스트로 대표되는 영국의 젊은 작가들(yBa: young british artist), 프랑스에서 짧은 기간 동안 전개되었던 누보레알리즘 운동(Nouveau Réalisme: 실제 사물을 거의 그대로 전시)과 함께 HGB출신의 독일의 젊은 작가들(yGa: young german artist)이 새롭게 떠오른다. 네오 라우흐(Neo Rauch), 팀 아이텔(Tim Eitel), 틸로 바움개르텔(Tilo Baumgärtel),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Christoph Ruckheberle)가 바로 그들이다.

 

 

 

ㅣ네오 라우흐 <Fremde> 2016 |

 

| 틸로 바움개르텔  <Lenileni> 2015 |

 

| 팀 아이텔 <Boat> 2004 |

 

HGB출신의 작가들은 곧 ‘신 라이프치히 화파’로 불리며 현대 미술계를 양분하는 미국과 유럽의 두 축 중 유럽의 화단을 이끌어가게 된다. 변방의 작은 도시에서 갑자기 불쑥 나타나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들의 비결은 ‘역사의식’과 ‘전통’이었다. 

 

고립된 사회주의 속에서 HGB는 자의든 타의든 전통적 회화 방식만을 고수했고 이러한 방식을 통해 음울한 사회와 역사의식을 담아내려 했던 출신 작가들은 ‘회화’라는 외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회주의 시대가 지나가자 세계 현대미술계가 다시 대중을 이어 줄 수단으로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형태인 ‘회화’를 주목했다. 신라이프치히 화파는 동독이라는 집을 벗어나 밖으로 처음 나섰을 뿐인데 이미 레드카펫이 깔려 있던 것이었다. 

 

어두운 장막 속에서 등장한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독특한 화풍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그들은 회화만을 고집했고 나름의 방식으로 꾸준히 그것을 발전시켜 왔기에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했다. 대표 작가인 네오 라우흐의 2000년도 작품 <Platz>는 2014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1,757,110 달러(한화 약 21억 1028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사회주의가 강요했던 예술의 표현 방식이 사회주의가 끝나자 세계 미술의 대안으로 주목받은 것이었다.

 

그는 2005년 모교인 HGB 교수에 임용되었는데 당시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화를 대하는 허접한 가치평가와 미술시장의 탐욕스러운 욕망에 대항하여 작업하고 싶고, 또한 그것을 후배 작가들에게 가르치고 싶다."(Spiegel, 2005.12.1)

 

 

 

| 네오 라우흐  <Platz> 2000ㅣ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영광을 만든 건 HGB뿐만이 아니었다. 젊은 작가들이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슈피너라이(Spinnerei)를 빼놓고 그들의 오늘을 논하기 어렵다. 라이프치히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방직공장 슈피너라이가 자리 잡고 있다. 독일 통일 후 빈 공장에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고 마침내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네오 라우흐도 일찍이 1992년 이곳에 자리를 잡은 터줏대감 중 한 명이다. 현재 9만㎡ 부지에 24채의 건물, 100여 개의 작업실, 11개의 갤러리, 카페와 도서관 등으로 채워진 이곳에 많은 작가들이 거대한 창작촌을 이루어 붉은 공장 단지를 화려하게 만들고 있다.

 

 

 

| 라이프치히 예술가들의 창작촌으로 바뀐 방직공장 슈피너라이 (Spinnerei) |

 

| 라이프치히 슈피너라이 (Spinnerei) |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명성은 동독이라는 암울한 시대상과 작가들의 극복 의지 그리고 통일 후 창작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 정부와 작가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그들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어쩐지 붉은 벽돌이 떠오른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묵직하고 단단한 그 느낌은 독일 미술이 견뎌왔던 굴곡의 역사를 지탱하는 주춧돌처럼 견고해 보인다. 그림에서마저 느껴지는 지극한 독일스러움은 이제 세계적인 것이 되어 관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부디 그 개성을 잃지 말고 더 많은 세상을 담아내길 바래본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은 세계 미술의 미래를 보러 라이프치히에 온다.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동독 안 위험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지겹도록 듣는 말,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편견에 쌓여있는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의 도시에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도 한 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unch.co.kr/@leipzig

글: 진병우 ㅣ leipzig.korea@g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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