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동독에 살아도 괜찮겠어?

 

지난 편에서는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이 도시로 오기 전 라이프치히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 그리고 이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어떤 이는 옛 동독의 도시 라이프치히로 간다는 소식에 주위의 우려 섞인 반응을 접했고, 또 어떤 이는 반대로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담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이 도시로 이주한 뒤 직접 살며 경험한 라이프치히는 어떨까? 어떤 이들의 우려처럼 외국인이 살기에 위험하고 힘든 곳일까, 아니면 그런 우려는 일종의 선입견 섞인 기우일 뿐일까?

 

독일 라이프치히로 오기 전 서독 출신 독일인 친구들로부터 이곳은 구 동독 지역이라 외국인이 지내기에 무척 힘들 거라는 걱정 어린 말을 들었던 아영씨는 친구들 말에 이곳 생활이 조금 염려되었다고 한다. 이제 라이프치히 생활 2년 차가 되는 아영씨에게 그간 이곳의 생활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 라이프치히에서 2년 정도 지냈는데, 그동안 생활하면서 라이프치히에 대해서 갖게 된 인상은 어땠나요? 어떤 도시인 것 같나요?

 

아영: 워낙 기대치가 낮았고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만 들어서 그런지 막상 와보니 들었던 얘기와는 달리 괜찮은 것 같았어요. 제가 살고 있는 동네가 좋은 동네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원에 가보니 저 혼자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고 그래서 동네에서 친구들을 빨리 사귈 수 있었어요. 도시도 깨끗하고 시내에 나가서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내가 외국인이어서 나를 배척하는 느낌은 별로 없었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생각했던 것보다는 좋았어요. 그러면서 서독과 동독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긴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인 경험들인데, 라이프치히에서 경험한 부정적인 면들도 있나요?

 

아영: 라이프치히에서의 삶의 만족도는 높은 편인데, 예전에 아이들 유치원을 급하게 찾다 보니 변두리 지역에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어요.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낮에도 많이 돌아다니는 안 좋은 동네였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트람(지상전철)을 기다리면 동양 여자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시답지 않게 와서 추파를 던지거나, “너 베트남에서 왔지?”라고 물어보는 게 동양인에 대한 쓸데없는 판타지를 사람들이 가지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것 말고는 아직까지는 크게 없었어요.

 

 

아영씨는 라이프치히로 오기 전에 했던 걱정에 비해서 이곳 생활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외국인으로서 사는 것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라이프치히 내 지역에 따라서 분위기가 다른 것을 경험했는데,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구역에서는 별 문제를 겪지 않았지만 거주 환경이 좋지 않은 변두리 지역에서는 외국인으로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ㅣ라이프치히 시내 토마스교회 앞 분수대와 공원에서 평일 오후를 즐기고 있는 시민들ㅣ

 

 

ㅣ라이프치히 시내 토마스교회 앞 공원의 오후 풍경.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가족 단위의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ㅣ

 

 

독일 남서부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어학과정을 마치고 1년 전부터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병우씨도 라이프치히 생활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고 한다. 병우씨가 라이프치히로 오기 전 프라이부르크에서 지냈던 주인집 할머니는 그가 라이프치히로 간다는 소식에 매우 많이 걱정하며 그곳은 동독지역이라 위험하니 조심히 다니라는 말을 남겼었다.

 

 

- 라이프치히에서 1년 정도 생활해본 소감은요?

 

병우: 오기 전에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좋았던 거 같아요. 정말 삭막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동독이고 이곳 사람들 자체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 프라이부르크 지역 사람들과 비교해서 이곳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병우: 일단 이곳 사람들은 표정이 경직되어 있어요. 그건 확실해요. 거기 (프라이부르크) 사람들보다. 기후나 날씨 때문에 그럴 수도 있는데, 거기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표정이 밝아요.

 

- 라이프치히가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면요?

 

병우: 가성비가 좋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규모에 비해서 역사나 문화 같은 요소들이 응집되어 있는 것 같아요. 라이프치히의 대형 미술관 (시립미술관)도 도시 규모에 비해서 무척 큰 규모이고요. 옛날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여기만의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아요. 전 그게 좋아요. 발전하고 있다,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ㅣ라이프치히 시내에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근현대사 박물관과 오래된 석조 건물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옛 모습을 지니고 있는 석조 건물의 내부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ㅣ

 

 

병우씨는 라이프치히 생활에서 서독보다 낮은 물가와, 도시 규모에 비해 풍부한 문화적 환경 그리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의 역동성과 그로 인한 독특한 분위기를 긍정적인 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영씨와 병우씨는 라이프치히 거주기간이 1-2년 정도로 비교적 최근에 이 도시로 이주해왔다. 라이프치히가 통일 이후 여러 면에서 빠르게 변화해왔고, 때문에 이 두 사람은 그동안 상당히 변화된 도시의 모습을 경험한 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보다 좀 더 오랜 기간 도시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고 경험한 사람들은 이곳 라이프치히의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라이프치히에 정착한 최초의 한국인으로서 1997년부터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혜진씨에게서 1997년 당시의 회상을 들어보았다.

 

 

- 처음 오셨을 때가 독일이 통일되고 10년이 채 안 되는 시기잖아요. 처음에 라이프치히에 왔을 때는 어땠나요? 그 당시 라이프치히의 모습, 첫인상이요. 

 

혜진: 유학생들 중에 서독에 있다가 여기에 온 애들은 그런 이야기를 가끔 했었어요. “여기 무겁다. 분위기 침침하다.” 딱 그 기분을 연상케 하는, 정말 회색이라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영국 버밍엄에서 지내다가 왔는데, 공업 도시라 거기도 좀 우중충해요. 근데 정말 라이프치히에 처음 왔을 때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오는데도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허허벌판이었고, 콘크리트에 낙서가 많았고, 헌 집들도 훨씬 많았어요. 어두운... 막 침침하게 어둡다기보다는 색으로 표현하자면 회색빛? 그리고 어떤 무거움... 사람들 표정들도 별로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좀 어두웠죠. 잿빛 도시 같았죠.

 

- 그 당시에는 한국분들은 얼마나 있었어요?

 

혜진: 거의 없었죠.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그때는 독일 남자와 아시아 여자가 걸어가는 것도 굉장히 희한하게 바라봤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쳐다봤었어요. 외국인들도 별로 없었고, 정말 뭐랄까... 유럽 안의 독특한 시크릿가든 같은...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런 분위기의 공간이었어요. 개방이 많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감추어지고 닫힌 자기만의 정원 같은 느낌이었어요. 특히 노인들이 저를 많이 쳐다봤어요. 노인들이 아시아 여자가 큰 독일 남자와 걸어가면 신기했나 봐요. 그래서 빤히 쳐다보는 사람, 가다가 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죠. 

 

 

혜진씨는 1997년 당시의 라이프치히를 잿빛 도시로 묘사했다. 통일 후 7년째가 되는 그 당시만 해도 동독 시절의 무거운 분위기를 채 벗겨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외국인 특히 동양 여자로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큼 그 당시 라이프치히에는 외국인들이 많지 않았고, 때문에 이곳 주민들에게 외국인, 특히 검은 머리의 동양 여자의 존재는 무척 낯설고 생소했었을 것이다.

 

 

ㅣ 2011년 고속 도시 철도인 S반 공사가 한창중인 라이프치히 중앙 광장 (왼쪽)과 2016년 현재의 모습 (오른쪽)ㅣ

 

 

ㅣ라이프치히 시내 그리마이쉬 거리의 2011년 (왼쪽) 과 2016년 현재 모습 (오른쪽)ㅣ

 

 

혜진씨보다 10년 늦게 라이프치히에 온 유정씨도 자신을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의 시선이 주는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유정씨는 2010년부터 라이프치히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에 처음 왔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선은 시내를 돌아다니자마자 저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어요. 당시만 해도 외국인이 많지 않았어요. 동양인이 드물었어요. 저는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고 박람회, 전시회, 공원에 가고 좀 활동범위가 넓다 보니 주변에 아시아 사람이 저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어요. 지나가면 쳐다보고... 같이 어학 공부하는 (외국인) 친구들도 ‘안 불편하냐. 너랑 다니니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가 2010년도, 5~ 6년 전이예요. 아직도 저를 쳐다보긴 하는데... 예전 같지는 않은 거 같아요. 2010년 당시 10명 중 9명 정도가 그랬다면 지금은 10명 중 3명 정도로 줄어든 거 같아요. ‘외국인이 우리 도시에 많구나’ 하고 본인들이 아는 분위기 같아요.

 

 

유정씨는 라이프치히로 오기 전 서독의 대도시에 얼마간 머물렀었는데,  그곳에서는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나 이방인으로 대하는 태도를 별로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서독의 대도시들은 외국인 거주자나 여행객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아무래도 그곳 주민들은 외국인들과 어울려 사는데 훨씬 익숙해져 있다. 반면 동독 지역 주민들은 사회주의 시절 폐쇄적인 사회환경에서 외국인들과의 접촉이 드물었고, 서독지역에 비해 여전히 외국인 비율이 낮기 때문에 여전히 외국인 특히 동양인은 이들에게 낯선 존재들이다. 지난 몇 년 간 라이프치히도 외국인 거주자와 방문자 수가 많이 늘고 있는데, 이런 변화가 라이프치히 주민들이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유정씨가 5~6년 전과 비교해서 그동안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훨씬 줄어든 걸 느끼고 있다는 말에서도 그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ㅣ2011년과 2016년의 라이프치히. 왠지 모르게 동독스러운(?) 책방과 낡은 건물은 사라지고 깨끗한 석조 건물이 들어섰다 ㅣ

 

 

ㅣ꼭 좋게만 바뀐 건 아니다. 주린 배를 채워주는 길거리 소시지는  2011년 1.5유로에서 지금은 2.5유로로 올랐다 ㅣ

 

 

2010년에 라이프치히로 이주한 성택씨도 이 지역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성택씨는 베를린에서 2년 정도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라이프치히에서 유학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2010년도 라이프치히에 왔을 때를 조금 회상해 본다면, 처음 라이프치히에 와서 받은 느낌과 인상이 어땠는지 알려주세요.

 

성택: 베를린에서 2년 정도 있다가 와서 그런지 몰라도 도시가 작고 사람들도 많이 없고 조금 삭막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시내만 시설이 잘 되어있는 느낌이고 트람타고 5분만 나가도 텅 빈 건물과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을 것 같은 건물들이 쭉 있고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여기에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가 있더라고요. 뭐 그렇게 많이 발달한 도시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첫인상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요.

 

- 라이프치히 시내를 비롯해서 변화를 체감하는 지, 그리고 어떤 면에서 체감을 많이 하시나요?

 

성택: 제일 큰 점은 일단 사람이 많아졌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생긴 것 같고, 대표적인 것은 학생들. 학생들이 이렇게 많아질 줄은 몰랐어요.

 

- 사람들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있나요? 

 

성택: 시기적으로는 모르겠는데요, 베를린에서 라이프치히에 왔을 때 처음 느낌은 여기 사람들은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죠. 하고 다니는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게 전혀 꾸미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들인데... 그때는 동독 느낌이 이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베를린에 있을 때는 동독이 어떤 느낌일까 전혀 체험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라이프치히에 와서 ‘아 동독지역의 느낌을 이런 걸 두고 동독지역이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 모습과 건물 모습... 지금은 그런 걸 못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 모습이 많이 바뀐 것 같아요.

 

 

ㅣ 매주 화요일 장이 서는 라이프치히 중앙광장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ㅣ

 

 

ㅣ라이프치히 대학교 강의동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ㅣ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이 외국인이 살기에 위험하고 힘든 곳이라는 생각은 이 도시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삭막한 잿빛 도시 같았던 이곳이 변화하는 데는 통일 후에도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변화의 모습이 금세 눈에 띠지 않았던 것이 그런 선입견이 유지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라이프치히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이 도시가 더 이상 삭막하고 위험한 동독의 도시라고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느 다른 독일 도시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이 가능한 곳, 오히려 다른 도시들보다 더 생동감 있게 변화하고 또 발전하고 있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동독 안 위험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지겹도록 듣는 말,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편견에 쌓여있는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의 도시에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도 한 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unch.co.kr/@leipzig

글: 오정택 ㅣ leipzig.korea@gmail.com

사진: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ㅣ leipzig.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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