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독일인, 독일어

2017/03/22

1786년 프리드리히 실러가 절망 섞인 어조로 어느 시에서 이런 문구를 남긴 적이 있다.

 

 

"

독일?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그 나라를 찾을 수 없습니다.

 Deutschland? Aber wo liegt es? Ich weiß das Land nicht zu finden.

"

 

 

정확히 159년이 지난 1945년 5월 29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이 일흔 번째 생일을 맞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가진 <독일 그리고 독일인>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

저는 미국 시민이지만 아직도 독일 작가로 남아 있으며,

독일어에 충실합니다. 저는 독일어를 저의 진정한 조국이라고 생각합니다.

 

Ich bin auch als amerikanischer Staatsbürger ein deutscher Schriftsteller geblieben, treu der deutschen Sprache, die ich als meine wahre Heimat betrachte.

"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토마스 만은 조국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비록 그가 태어난 육체의 조국 독일은 전쟁으로 무참히 잿더미로 변해버렸지만, 정신의 조국인 ‘독일어’는 영원히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는 의미의 연설은 지금도 깊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1806년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된 이후 바이에른 왕국의 초대 왕이 된 루드비히 1세는 독일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도나우 강변의 레겐스부르크 인근에 발할라(Walhalla) 기념관을 건립할 것을 명한다. 새로운 독일을 창조하겠다는 염원이 담긴 프로젝트였다. 루드비히 역시 조국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독일어를 꼽은 인물이다.

 

독일어가 사용되는 지역은 매우 광범위하다. 저 북쪽 발트 해에서부터 알프스 산맥까지 그리고 라인강 유역의 지역과 폴란드에 이르기 까지 사람들은 독일어를 사용했다. 물론 각 지역의 독일어는 서로 소통이 어려울 만큼 심한 사투리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독일어 방언들이 기록되는 방식은 한 가지였고, 그 방식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역사박물관에는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루터 부부의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다. 루터의 부인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는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맵시 있는 보디스를 조여 입고, 털가죽 안감의 값비싼 외투를 입었다. 반면 그림에 등장하는 건장한 체구의 루터는 검은색 옷과 검은색 모자를 머리에 썼다. 루터는 수도사였고, 그의 아내는 수녀였다. 그림 속 부부의 모습은 평온해 보이지만 1517년 루터는 세상을 뒤 짚어 버린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또 다른 업적은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바로 루터의 독일어 성서에서 근대 독일어가 자리 잡게 된다.

 

 

 

 

 

 

 

 

 

[지암볼로냐의 미술사 박물관]

미술사학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읽어간다.
글 : 미술사학자 김석모
블로그 : http://giambologna.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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