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2017/03/16

 

 

"구덩이에 빠진 것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구덩이를 파는 것을 멈추는 일이다." 

 

- 워런 버핏 -

 

 

 

독일에서 일하기라는 타이틀로 매거진을 만들어 놓고도 글을 올리기가 망설여져 한 동안 글이 없는 채로 있었다.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일이고 게다가 이제 막 시작했는데, 너무 개인적인 경험을 편협한 시각에서 전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복지 천국이라는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 등 북유럽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독일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인데, 나의 짧은 경험으로 그런 많은 이들에게 대표성이 없는, 때로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 번 수정을 거쳐 묵혀둔 첫 글을 이렇게 올리는 것은, 불합리하고 힘든 현실에 대해 불평하고 참고 견디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법은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내 삶에 맞는 다른 옵션들을 찾아 나서면 나에게 맞는 그 무엇인가를 또는 그 어디인가를 반드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이라는 밴드

박찬호와 박세리가 아직도 국민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은 IMF로 힘들었던 시기에 한국인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삼성이나 현대 같은 기업들의 국제 위상이 오늘과 같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에서 선전하는 한국 선수들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데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한지 20년도 넘은 지금은, 한국 브랜드의 핸드폰, TV 그리고 자동차를 세계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제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 이제 코리안드림이라는 스토리에 감동받아야 하는 군번은 아니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백승호, 이승우나, 영국 프리미어리그 손흥민, 기성용 등 미디어의 해외 스포츠란에는 여전히 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진 기사를 쏟아낸다.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해외 어디서도 관심 없는 '코리안 더비 성사' 등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기사 제목을 달아댄다. 최근 몇 년 간 국내의 좋지 않은 정치 경제 상황과, 오포 세대, 지잡대, 금수저, 헬조선 등 한국 사회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극으로 치닫는 요즘 상황과는 대비된다. '한국'이라는 밴드를 그나마 붙잡아두고 싶어 하는 정부의 입김인지, 해외 스포츠란 기자들의  눈물겨운 나라사랑의 노력인지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어린 학생들과 지금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의 이미지가 겹친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

 

 

행복의 조건은 모두가 다르다.

외국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글로벌 기업에서 세계무대를 누비는 상상을 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연 매출 50억이 채 안 되는 독일 중부 지방의 중소규모 의료용품 유통회사로, 해외 취업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보기에 보잘것 없는 곳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찾아낸 지금 나의 생활은 이 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다.

 

1년 전 만해도 한국에서 아내와 나는 삼성전자에서 실무의 핵심인 과장으로 일했다. 예측 가능하듯이 부지런히 바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았고, 서울에 한복판에 살았으며, 중형차를 탔다. 남 보기에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퇴근은 늦었다. 세 살배기 아이는, 아침에는 윗집 누나에게, 낮에는 어린이집, 저녁에는 이모님 이렇게 하루 종일 남의 손에 맡겨 놓고, 무엇을 먹는지도, 무슨 말을 배우는 지도 모른 채 지내야 했으며, 혹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저녁에 봐주시는 이모님께 어렵게 부탁을 하며, 그 마저도 안 되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주말이면 맛집을 찾아다니며 일상의 희생을 보상을 받는 그런 뻔한 삶이었다.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반복하는 하루하루가 무엇을 위함인지, 누구를 위함인지 헷갈린 채,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그 삶도 사실 최상의 답안지가 아니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은 그게 아니었다.

 

 

월급은 절반도 안 되지만

지금은 그때 받던 월급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목돈이 들어가는 전세 부담이 없고, 의료비, 교육비가 내가 내는 세금으로 충분히 커버가 된다. 사교육비가 없고, 대학은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무료이다. 세금이 많지만 아깝지 않은 이유이다. 훌륭한 사회 복지란 이런 거는구나라고 피부로 느낀다. 혼수 문화가 없으니 자식들 결혼자금을 모아야 하는 부담도 없다. 그저 월세 100만 원과 생활비 100만 원만 충당이 되면 사는데 큰 걱정이 없다. 세 후로 월 200만 원이면 부부가 둘이 벌기에  버거운 정도는 아니다. 물론 집세는 사는 지역과 도시에 따라 차이가 난다. 생활비도 소비 성향에 따라 차이가 나겠지만, 우리 가족은 많이 쓰는 편은 아니고, 이동수단은 자전거이다.

 

 

하루에 사는 세 가지 다른 삶

하루에 나는 세 가지 다른 삶을 산다. 낮에는 프로페셔널(?) 직장인으로서, 오후에는 남편과 아빠로서, 그리고 밤에는 내 개인으로서의 삶이 그것이다.

 

아침 7시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서 오후 4시면 퇴근을 한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간다. 아직 좀 쌀쌀한 날씨지만 어린이집 흙밭에서 뒹굴며, 놀이에 집중하고 있는 아이와 같이 좀 더 놀다가 5시 즈음에 집에 돌아온다. 집에 오는 길은 하루 종일 독일말을 해서 독일말이 편해진 아이에게 한국말도 시키고 한국 노래를 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저녁을 해서 같이 먹고, 책을 읽어주다가, 저녁 8시면 아이를 재운다. 그러고 나면 밤에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

 

한국에서는 월요일이 시작되면 금요일 저녁이 되어야 일이 끝나고 가족으로 돌아왔지만, 지금은 하루에도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니 하루가 길고, 생활은 만족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가장 큰 변화는 단지 나와 가족을 위한 시간이 많아진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변화는 삶의 중심이 '일' 또는 '타인'에서, '나'로 옮겨 왔다는 것이다. 여기 독일에서도 일은 생계의 중요한 수단이지만, 삶의 전부는 아니다. 집중해서 일을 할 때는 일을 하지만, 시간이 되면 딱 끊고 다시 자기 개인 생활로 다시 돌아온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사람 사는 것은 다 같은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앞으로 내가 여기에 글로 풀어내어야 할 숙제이지만, 시작은 작은 차이이다. 작은 사고방식의 차이가 사회적으로는 큰 차이를 만들고,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정말 한국 만한 곳이 없을까?

내가 썼던 브런치 글 중에 '행복 유목민'이라는 글이 있다. 현실이 불행하거나 불만족스러우면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한다. 미녀가 내게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어주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꿈도 꿔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이 인생에서 핵심적인 다섯 가지를 포기하기에 우리가 모르고 있는 세상은 너무 크지 않을까...

 

브런치 글 '해외 취업의 진실과 거짓- Alice in Wonderland'에도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지만,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살아야 한다.' '집 나가면 고생이다.' '나가서 살아보니, 한국만 한 곳이 없더라.' '김치 없으면 못 산다.' 이런 말들이 한국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선입관을 만드는 것이라면, 거꾸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넓은 세상에 정말 한국만 한 곳이 없을까? 세계 어디 가도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고 한국 방송을 볼 수 있다. 이 세상에는 내가 믿고 있는 상식과는 다른, 네이버 지식인에서는 꼭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지금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종차별을 겪으면 어떻게 하지?

"동양인이라고 좀 낮게 보고 하는 게 있지 않을까요?"

"인종차별이 아직도 있다던데 괜찮아요?"

"거기는 그래도 일본인이 많아서 동양인을 그렇게 낮게 보지는 않는다던데요?"

 

빠지지 않는 질문이다. 우리 자신에 대해 왜 열등감을 느끼며 걱정을 할까? 인종차별은 존재하지만, 내 인생을 결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만큼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게다가 웬만해서는 한국만큼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극우단체 백여 명이 외국인, 특히 시리아 난민에 대해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꽤 큰 규모였다. 그런데 그 집회에 반대하는 천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그들은 집회의 주체인 극우단체를 둘러싸고 그들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같이 소리를 질러 극우단체들의 소리를 묻어버렸다. 그런 것이다. 외국인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이 심한 곳은 외국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이라는 말이 새로운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외국인을 대하는 시각이 차별적이니 그들도 우리를 그렇게 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돌아볼 일이다. 어쨌든 어디를 가든 내 스스로 당당하면 된다.

 

 

그런데 내 실력으로 가능할까?

처음에 이력서를 몇 군데 내고 거절 연락을 받았을 때는 독일어 실력이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했다. 이 정도 글로벌 대기업 이력이면 시간이 걸려도 어딘가든 될 줄 알았다. 적어도 독일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에는 될 줄 알았다. 어쩌다 운 좋게 걸쳐 입은 삼성전자라는 타이틀에 취해 진짜 내 실력도 모르고 오만했던 것이다. 그런데 면접을 몇 번 거치면서 내가 진짜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진짜 나만의 것이 없었던 것이었다.

얼핏 보면 화려해 보이는 이력서 일지 모르지만, 사실 누구를 갖다 놔도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했다. 정작 중요한 실무는 소위 '을'이라고 하는 에이젼시에서 했다. 내가 그 일을 한 것이 아니고 그 자리가 그 일을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도 잘 못하는 내가 지금 일자리를 잡은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처음 3개월 동안은 무급으로 인턴을 해야 했다. 내 스스로 시장분석을 하고 회사 상황에 맞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제안을 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좋아했고 정식으로 계약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6개월 수습기간이 있고, 그동안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이 여전히 있다. 계속해서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지만, 능동적으로 나의 일을 만들어하기 때문에 일인 동시에 자기 계발이며 공부다. 일이지만 즐거운 이유이다.

 

이공계는 인문계보다는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 나처럼 인문계는 당연히 독일어를 잘 해야 하지만, 나의 경우는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약간은 특수한 경력이 도움이 되었다. 그래도 전문성을 위해서 전에는 직접 하지 않아도 되었던 포토샵이나 HTML, CSS 등 테크니컬 한 부분도 이제는 찾아가며 공부를 하고 있다. 많이 듣던 말이지만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으려면 Speciallist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한국에서는 Generalist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전반적인 것을 다 볼 줄 알아야 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한 분야에서 Specialist가 되면 다른 분야의 것은 금방 배울 수 있다.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Specialist가 되면 Generalist가 될 수 있지만, Generalist는 Specialist가 될 수 없다. 사장은 Generalist가 되어야 하지만, 사원에게 Generalist가 되라고 하는 건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 끼워 넣으려는 회사의 속셈일 뿐이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내가 많은 나라 중에 독일로 온 것은 사실 내 아내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가 독일 사람이라고 해서, 사는 곳을 옮기는 것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아내도 나도 결혼하고 10년 가까이 살아온 한국을 떠나,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할 일도 정해지지 않은 곳으로 가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부딪혀보기로 용기를 냈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아내도 독일에 와서 1년 가까이 일자리 없이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며, 이력서 내고 면접 보러 다니는 초조한 생활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1년 전에는 상상도 못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내 스펙이 뛰어나고 영어나 독일어가 유창한 것은 결코 아니다. 독일에 와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면서 실속 없음에 부끄러웠고, 대기업 타이틀을 벗고 외국에 나오니 정말 보잘 것 없었다.  진정으로 고민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고,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작은 기회가 왔다. 앞으로도 상황은 계속 변할 것이다.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상황에 맞게 나도 능동적으로 계속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며, 이 작은 기회를 발판 삼아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또 공유하고 싶다.

 

 

 

 

 

 

 

[독일에서 일하기]
한국 그리고 독일, 일 그리고 삶, 관성대로 살지 않기
 

글 : 송현욱 (hionuk song)
홈페이지 : https://brunch.co.kr/@songhion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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