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산다는 것

2017/03/16

나는 지금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에 살고 있다.

 

라이프치히? 독일 도시하면 베를린, 뮌헨, 프랑크푸르트 정도는 쉽게 떠올리겠지만,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은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는 꽤 생소할 것 같다. 나만 해도 라이프치히에 오기 전까지 이 도시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었다. 사람의 인연이 그렇다. 어느 날 생전 모르던 사람과의 인연이 생기고, 그 사람과의 인연이 좋든 싫든 내 인생의 한 공간을 차지한다. 사람과의 인연뿐만 아니라 내가 삶의 터로 자리 잡고 있는 곳도 그렇다. 저마다 다양한 이유와 계기로 지금 살고 있는 곳과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의 공간은 나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 면에서 이곳 라이프치히와의 인연은 내 삶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통일된 독일을 경험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옛 동독의 도시 라이프치히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한 달 전 평화혁명을 통해 통일의 물꼬를 튼 상징적 도시이다. 독일은 2016년 올해 통일 26년째를 맞는다. 라이프치히도 다른 동독의 도시들과 함께 지난 26년간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옛 동독 시절의 흔적을 하나둘씩 지워가며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내가 라이프치히에서 지낸 지난 7년간만 해도 거리 곳곳의 동독식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현대식 새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

 

 

ㅣ독일 통일의 물꼬를 튼 평화 혁명이 시작된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ㅣ

 

 

ㅣ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작가 미하엘  피셔(Michael Fischer)가 라이프치히의 평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벽화ㅣ

 

 

그 변화의 과정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한국이 통일된다면, 그리고 통일된 한반도의 20년 후 모습은 과연 어떨까? 평양, 개성을 비롯한 북한 지역과 북한 주민들은 통일 이후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아직 통일도 요원한데, 벌써 20년 후를 상상해 본다는 건 좀 앞서간 것일까? 하지만 통일된 독일, 그중에서도 옛 동독 지역을 경험하며 그런 상상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준비 없는 통일은 잠시 잠깐의 감격과 흥분을 선사한 뒤 이내 버거운 현실의 문제들을 한가득 쏟아낼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통일에 대한 상상을 통해 통일된 한반도를 구상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 통일이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불행이 아닌 축복이 되는 길일 것이다. 그런 상상과 구상의 작업에 독일의 통일과 현재는 좋은 상상의 질료가 되어 줄 수 있다. 특히 구 동독지역의 변화와 현재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통일 후 긍정적인 변화는 무엇인지, 또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면 한반도 통일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데 있어 좋은 모델을 얻거나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본 기획은 앞으로 1년간 라이프치히의 주거, 환경, 일자리, 교육, 문화 등 이곳 지역민들의 삶을 조건 짓는 사회문화 환경을 살펴보고 이를 글과 사진으로 담아보려 한다. 이 기획을 꾸려갈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팀 구성원은 현재 모두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다. 독일, 그중에서도 옛 동독의 도시에 살아보는 것이 한국인으로서는 좀 특별한 경험이고 기회라는 생각에서 이 곳의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앞으로 이 곳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서로 돌아가며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을 살려 이 공간에 담을 예정이다.

 

 

ㅣ라이프치히의 봄, 저 멀리 라이프치히 신 시청사 건물이 보인다ㅣ

 

 

 

라이프치히, 그 첫 인연

 

첫 번째 순서로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는 한인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금까지의 독일 통일에 대한 기사나 연구들은 주로 당사자인 독일인들의 경험과 의견에 초점을 두어 왔다. 하지만 통일 후 동독의 변화를 함께 경험하며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경험과 시선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나름 새롭고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땅의 이방인이지만 분단이라는 역사를 독일인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이방인으로서 이 땅을 보는 남다른 시선을 한국인들은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우선 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을 한분 한분 만나 어떻게 라이프치히에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오기 전까지 라이프치히에 대한 기대와 인상은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이프치히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고 구 동독지역에 위치해 있어 이곳에 오기 전에 사전 정보를 충분히 얻기가 어렵다. 그만큼 선입견과 상상력이 발동되기 쉬운 곳이다. 통일 후 우리가 평양이나 개성 혹은 이름조차 생소한 옛 북한의 도시를 처음 방문하거나 그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고 생각해보자. 그 기분과 느낌은 어떨까?

 

라이프치히에서 직장을 얻은 남편을 따라 라이프치히로 온지 2년째가 되는 아영씨는 독일에서의 첫 도시가 라이프치히였는데, 2년 전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남편이 라이프치히로 인터뷰를 간다고 했을 때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를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어요. 사실 독일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뮌헨, 프랑크푸르트, 쾰른 이렇게 서독에 있는 큰 도시들만 알지 다른 도시들은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라이프치히라고 했을 때 뭐 독일에 있는 도시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캘리포니아에 있던 주변의 많은 독일 친구들에게 남편이 라이프치히로 인터뷰를 간다고 했을 때 그 친구들의 반응들이 다 별로 안 좋은 거예요. 그 친구들은 모두 옛 서독 출신들이거든요. 다들 반응이 “야, 거기 동독이야”였어요. 내가 “동독은 없잖아. 다 독일이잖아”라고 했을 때 “그래도 동독은 달라” 라며 거기에 가면 외국인은 너밖에 없을 거라고 했어요. 캘리포니아는 다문화 도시인데 그곳과 반대되는 아주 극과 극의 도시를 네가 경험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다들 “동독사람들은 좀... 그런데...” 라며 반응이 시원치가 않더라고요. 저는 사실 아무런 선입견이 없었어요. 알고 있는 정보가 없었으니까요. 독일에 가면 되지 뭐. 거긴 선진국이고 가서 살면 되겠지 뭐. 그랬는데 다들 반응이 라이프치히는 동독이고 외국인도 없고, 그곳 사람들은 외국인도 싫어하는데라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사실 올 때 조금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죠.

"

 

 

라이프치히 대학에 재학 중인 병우씨는 1년 전 라이프치히로 왔다. 그 전에는 어학공부를 위해 독일 남서부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에서 10개월 정도 생활했다.

 

 

독일 오기 전까지 라이프치히는 이름만 들어봤어요. 동독이라는 점이 중요한데 저는 라이프치히로 온 이유 중 그게 제일 컸어요. 통일을 위한 운동이 여기서 시작됐다는 거 그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니콜라이 교회가 무척 좋더라고요. 처음에 왔을 때는 거기를 막 서성거려봤어요. 아 여기가 그런 곳이구나. 그런 것도 있고 괴테를 좋아하는데 괴테와도 인연이 있고, 독일 오기 전에는 라이프니츠가 제 롤모델 이었어요. 그래서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적절한 규모에 제가 좋아하는 요소가 다 있고, 또 (물가도) 싸고.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에서 물가가 세 번째로 비싼 도시예요. 그리고 노인분이 많다는 게 쉬러 오는 거라 여유가 있기 때문에 물가를 다 올려놓으셨어. 학생들한테는 정말 안 좋아요. 힘들어요. 여기만큼 저한테 맞는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왔어요.

 

(프라이부르크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집) 주인 분들은 걱정을 하셨죠. 할머니는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주인 아저씨는 조금 그래도 우리로 치면 지식인 계층이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알고 이해하고 계시는데, 할머니는 거기 동독 아니냐고.. 동독 위험하다고 조심하고 다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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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라이프치히로 간다는 소식에 주변 서독 출신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다. 그들은 구 동독지역을 위험하고 폐쇄적이어서 외국인이 살기에 좋지 않은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과거 통일 직후만큼은 아니겠지만 통일된지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서독 지역민들의 의식 속에 서독과 동독 간의 경계는 채 걷치지 않은 것 같다. 만약 한국이 통일되고 20여 년이 지난 후에 한 외국인 친구가 북한 도시로 이주한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게 될까? 우리도 서독 주민들과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ㅣ구 동독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텔로 손꼽혔던 라이프치히의 호텔 아스토리아. 1997년부터 지금까지 빈 건물로 남아있다ㅣ

 

 

앞의 두 사람의 경험과는 상반되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1997년부터 라이프치히에서 19년간 살고 있는 혜진씨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동독 출신 독일인과 결혼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기 시작했다. 1997년이면 1990년 독일 통일 후 7년째인 해로 그녀는 라이프치히에 정착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질문: 처음 라이프치히로 오시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요?

혜진: 여기 오기 전에 영국에서 살았어요. 거기서 일하고 지내다가 독일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삶을 바꾸게 된 거죠.

남편이 (라이프치히 이웃 도시인) 할레(Halle) 출신인 데다가 라이프치히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갖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질문: 그러면 남편분은 통일 전 후를 다 경험하셨겠네요.

혜진: 그렇죠. 대부분의 성장 과정은 옛날 동독에서 자라다가 성인이 된 다음에 통일을 경험한 경우죠.

 

질문: 처음에 독일로 오시면서 첫 도시가 라이프치히였는데, 그 당시 이곳에 오시게 되면서 라이프치히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이나 이곳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들이 있었나요?

혜진: 첫째, 라이프치히를 몰랐어요. 당시 유명한 몇몇 도시들 외에는 독일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는 게 없어서 라이프치히가 통일에 관련된 깊이 있는 것들에 대해 접하지 못했어요. 알려고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라이프치히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들이 없었죠. 뭐 깊이 있는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단순한 호기심 정도만 가지고 있었고, 와서 천천히 알아가게 된 경우였던 것 같아요. 그전에 많이 알아보고 공부해 보고 어떤 곳일까 하고 찾아보진 않았죠. 그때 결혼 대상자가 라이프치히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많이 사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게 많이 보여주려고 했었어요. 건물들, 발전되어 온 흔적들, 이런 것들을 보여주더라고요.

 

질문: 결혼하시고 나서요?

혜진: 결혼 전에요. 사귀면서 몇 번 왔다 갔다 했었거든요. 그때 굉장히 라이프치히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 느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혜진씨의 이야기에서 동독 출신 남편이 가진 라이프치히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서독지역 독일인들이 동독을 보는 시각과 무척 상반된 모습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은 좌절되고 생필품조차 궁한 남루한 현실만 남겨졌던 이곳에 그가 가졌던 자부심과 애정은 무엇에 근거했던 것일까? 외부인들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값진 것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질문: 어떤 면에서 그런 애정이나 라이프치히에 대한 특별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나요?

혜진: 남편은 서독은 이미 발전이 충분히 이루어졌고 안정되어 있어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보기가 어려운데, 라이프치히는 다시 태동하고 생동하는 도시의 상징이라고 말했어요. 다시 출발하는 곳에 서서 볼 수 있는, 완성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살아있는 도시라고요. 그리고 옛날의 아름다움들.. 건축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요. 그런 면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 같아요.

 

 

혜진씨의 독일인 남편은 옛 동독 도시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다시 태동하고 변화하는 도시의 생동감과 에너지를 가치 있게 보았다. 이러한 애정 어린 긍정적인 시선은 이 도시와 함께 삶을 이어온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애정과 자부심이 통일 이후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해야 했던 동독 주민들에게서 생겨난 방어기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ㅣ라이프치히 구 시청사가 있는 중앙 광장 (Leipzig Markt)에서는 시시때때로 장이 서고 행사가 열린다ㅣ

 

 

ㅣ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 라이프치히 대학교 본관 노이에 아우구스테움 (Das Neue Augusteum)ㅣ

 

 

이처럼 라이프치히에 대한 안팎의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지만, 라이프치히는 지난 20여 년간 변화해오고 또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미완성의 도시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도시가 여전히 그러한 변화의 선상에 있기에 이 도시를 몇 가지 인상으로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일일 것 같다. 대신 이 도시가 어떻게 변화해왔고, 또 지금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 변화 속에서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양새는 어떤지 세심히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안도 밖도 아닌 경계지대 어디엔가 서 있는 이방인으로서 그렇게 세심히 들여다보는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현재 시작점에서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이방인 혹은 경계인의 시선이 관찰자로서의 작업에 보다 더 어울릴지도 모르고, 최소한은 이 도시의 공간과 시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동독 안 위험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지겹도록 듣는 말,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독일 통일 이후 편견에 쌓여있는 '구 동독 도시', 라이프치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는 북한의 도시에서 그 곳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을까요?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이야기도 한 번 상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 https://brunch.co.kr/@leipzig

글: 오정택 ㅣ leipzig.korea@gmail.com

사진: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ㅣ leipzig.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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