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영화 만들기

 

독일에서 영화 만들기

 

국제적인 인정을 받으며 각종 영화상을 휩쓸고 있는 „독일산“ 영화들.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넘어야 했던 산은 매우 험난했다. 독일 영화계가 수 십 년간 역경을 이겨내야 했던 이유는 독일의 역사에도 있다. 그림들이 움직이는 법을 배우고, 전 세계 영화 선구자들이 새로운 매체의 기술과 미학적 발전을 위해 경쟁을 벌이던 1900년경, 독일의 영화 제작 수준은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 1912년에 설립된 유럽 최초의 대규모 영화 제작소인 전설의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에서 프리츠 랑과 프리드리히 빌헤름 무르나우와 같은 감독들은 독일 영화의 역사를 써내려 갔다.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나치 시대와 예술가들의 이민 행렬, 전쟁, 독일의 분단은 독일 영화계에 오랜 휴지기를 가져왔다. 그로부터 수 십 년간 독일 영화계는 부활을 꿈꾸지 못했다. 1945년 이래 분단된 독일에서도 영화제작은 이루어졌지만, 국제 영화 시장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에 의해 장악되어 갔고, 독일 영화들은 더 이상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나마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감독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서독 작가주의 감독인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빔 벤더스, 폴커 슐렌도르프에 불과했다.

 

 

 

 

 

 

 

 

 

 

 

 

 

 

 

 

 

| 통일 후에 도약 |

 

독일 통일이 이루어진 후 독일 영화계에는 급격한 상승기가 찾아온다. 이러한 흐름은 내용적인 면과 구조적인 면 모두에서 나타났다. 변화된 정치적 상황과 동서독 문화적 충돌과 같은 동시대적 주제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고, 국제적 관심마저 일깨워냈다. 2003년에는 독일영화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동시에 신진 영화 감독들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졌다. „First Steps Award“은 이들에게 영화상을 수여하고, 베를린 영화제의 „Perspektive deutsches Kino“(독일영화전망) 섹션은 데뷔 영화를 소개할 기회를 제공했다. 주변 국들과의 공동 제작 영화를 비롯해 독일 영화를 찾는 관객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2009년 독일 영화계는 정점을 찍게 된다. 극장에 걸린 독일 신작 편수는 212편이 넘었고, 그 중 백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든 영화들만 14편에 달했다. 국제 영화제를 석권한 영화들도 많았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은 하얀 리본,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바시르와 왈츠를, 베니스 영화제 황금 사자상의 영예를 안은 레바논,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소울 키친과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영화만도 네 편에 달하며, 그 중 두 편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카운터페이터, 2008, 타인의 삶, 2007).

 

 

 

 

 

 

 

 

 

 

 

 

 

 

 

 

 

 

 

 

| 영화, TV 방송국, 영화 지원 |

 

2010년도 독일에서 제작된 신작 편수는 180편으로 그리 만족할만한 성적은 아니다. 이러한 결과는 업계의 자연스런 경기 기복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로 인해 오래 전부터 반복된 영화와 TV 방송국 간의 협업을 둘러싼 논의가 또 다시 불거졌다. 지난 40년 간 TV 방송국의 지분 참여 없이 제작된 독일 영화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TV 방송국이 영화의 극본이나 예술적 부분에 너무나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는 걸맞지 않은 소규모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는 논쟁이 40년 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참여 없이는 특전 유보트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완성될 수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TV 방송사들은 이러한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슈테판 아른트(굿바이, 레닌!)과 같은 흥행에 성공한 감독들 역시도 TV 방송사들이 영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관객 동원 실패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슈테판 아른트 감독은 독일영화아카데미에서의 토론에서 „저는 독일 영화들 중에는 그 자체로 작품성이 떨어지는 작품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영화들에는 독창성이나 오락성, 흡입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독일영화아카데미의 대표인 알프레드 올리히하우스가 말하듯 „일상보다 거대한(bigger than life)“ 한 영화들이 독일에서 제작되려면, TV 방송사들의 재정 지원보다도 더 큰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사망한 베른트 아이힝거(향수, 히틀러와 제3제국의 몰락)와 레지나 치글러(헨리 4세), 데틀레프 북(맛 좀 볼래, 스롤란 마이러브), 장기간 바바리아 영화사의 대표를 맡았던 귄터 로어바흐(스탈린그라드, 베를린의 여인)와 같이 성공한 제작자들마저도 공공 영화 지원금의 도움을 받았으며, 지금도 받고 있다. 이는 즉, 각각의 영화 프로젝트 마다 매년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제공하는 지원금에 대한 경쟁이 벌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독일 최대 규모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베를린의 바벨스베르크와 뮌헨의 바바리아와 같은 영화 스튜디오들 역시 이러한 지원금 없이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 신진영화인: „현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영화의 배급에 이르기까지 제공되고 있지만, 기관에 따라 다양한 조건 하에 지급되고 있는 제작 지원금을 둘러싼 장기간의 경쟁은 영화 제작 예산의 분배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신진 영화 감독들은 이러한 정글의 세계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다. 다섯 개의 영화 학교를 비롯해 종합 대학과 전문 대학의 영화 전문 과정들이 제공되고 있어 독일에서의 영화 교육이 „훨씬 더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First Steps Award의 담당자 안드레아 호넨은 장기적으로 영화계에서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하는 신진 감독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

 

매년 독일의 영화 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영화 시장에 진출하는 신진 감독의 수는 50명에 달한다. 알프레드 홀리히하우스는 이들에게 있어 데뷔 영화의 제작 환경이 차기 작을 제작할 때보다 훨씬 더 낫다고 말한다. „독일에서는 첫 영화를 제작할 때 엄청난 보너스들이 주어집니다. 모두들 열정적으로, 죽을 힘을 다해 영화를 제작하죠. 배우들이나 스텝들 역시 영화 제작 현장을 즐기고, 관대한 편입니다. 영화에 대한 열정도 엄청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First Steps Award가 지급하는 수상금의 대부분은 데뷔 영화 제작으로 인한 부채를 갚는데 쓰여지고 있다. 그리고나면 곧 현실의 문이 열린다. 누구나 창의성의 극대화와 영화 지원 위원회, TV 방송사를 대상으로 한 설득 작업,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으로 인한 부담을 이겨내는 것은 아니다. 바덴-뷔템베르크 영화 아카데미에서 각본을 전공한 악셀 멜체너가 경험한 것처럼, 그와 함께 학업을 마친 10명의 젊은이 중 영화계에 남는 이들은 고작 세 명에 불과하다. 그는 „나머지는 포기하고, 심리학으로 전과하거나 간병인으로 전업 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현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출처 |

 

영화: DIE ANDERE HEIMAT (https://youtu.be/qmqg3rl-ElI)
사진: http://www.filmportal.de/en/node/1211323/gallery
글: ⓒ주한독일문화원(https://www.goethe.de/ins/kr/ko/index.html)

 

 

 

Please reload

Please reload

최신 업데이트

​최신 글 보기

Please reload

  • White Facebook Icon
  • White Instagram Icon
  • flea3
  • recipe3

TAG : ​독일, 베를린, 독일유학, 독일생활, 독일대학, 독일음대, 독일미대, 독일 커뮤니티, 독일에서 예술하기, DIA BERLIN

© DIA BERLIN